내 마음에 들었거나 이해가 됐을때에만 사랑하고 거두는 사랑이 아니라, 존재 자체인 부모의 사랑은 자식의 동의가 없어도, 자식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코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자인 혜민스님은 하버드대를 다녔었다고 나옵니다. 기타 다른 유명대학도 종교학 관련으로 거치셨었네요. 이렇게 훌륭하신 인재분이 스님이라는 직업을 가지셨다는 데에 조금은 의구심과 함께 놀라게 됩니다. 게다가 전문작가들도 쓰기 힘든 좋은 내용의 책을 몇 권씩이나 발표하신다니 정말 속세에 존재하지 않는 보통인은 아니라는 생각 또한 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따듯한 말들로 구성된 도서들을 스님분들이 많이 내십니다. 불교에서 수많은 수행 결과 그런 내공이 글자로 표출되는 걸까요. 갑자기 승복을 입어볼까라는 힘겨운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각설하고요. 이 책은 여러 가지 큼지막한 주제들로 각각 길지 않은 덕담과도 같은 대화체 문체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 중에서도 가족과 관련된 내용이 조금은 관심이 가는데요.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회상을 느낌으로 적어놓고 있어요.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고 맞아 그럴 거야 그랬어!라는 감탄사가 가슴속에서도 자꾸 되뇌게 됩니다. 부모님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건강에 관한 부분이 제일 클 겁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의 목사 아버지의 둘째 아들에 대한 사랑처럼 가슴 심연에서 항상 흐르는 사랑은 오늘의 부모님들 모두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냥 평범한 아들도 아닌, 출가한 아들도 당연히 낳아준 부모가 있는 것이죠. 젊을 때는 그렇게 곱고 현명하시고 지혜롭던 분들이 어느샌가 머리가 희끗해지고 몸도 왜소하지고 각종 병에 나약해지시는 것을 보게 되면 이루 안타까움이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작가분이야 부모님들이 아직은 그래도 건장하리라 보이는데요. 본인은 이미 몇년전에 어머니를 여의게 되었죠. 아버지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부정과 비리를 모르시고 꼼꼼한 성격이신 반면, 어머니는 오히려 할 말을 다하는 생활력면에서는 여장부 같은 스타일이셨죠.

아들만 삼 형제인 집에서 어머니 혼자서 많지 않은 아버지의 월급으로 항시 불만이 많으셨었죠. 조그만 구멍가게도 하셨고, 보험판매원 생활도 하시면서 부족한 우리의 교육과 뒷바라지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둘째, 셋째는 모두 독립을 해서 가정을 꾸렸으나 첫째는 아직 혼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병이 없어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병이 있더라도 그 병을 잘 관리해가면서 오래 사는 것이지요. 주위의 병과 싸우시는 분과 그 곁을 지켜주시는 가족분들 모두 끝까지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혼자가 편해서인지 어떤 죄책감 때문인지 그런 기구한 삶을 살고 있죠. 장남이기에 부모님의 기대가 너무 컸고, 국민학교 때는 곧잘 공부를 잘했으나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결국엔 지방 대학에 겨우 들어가게 되었죠.

아마도 의사가 될 거라 믿었던 어머니의 믿음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솔로를 만든 작지 않은 이유라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남모르게 어머니의 속마음을 썩혔던 탓인지, 어느 날 큰아들의 집에 오신던 길에 통화를 하시던  중 갑작스럽게 비명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겨 버립니다.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시던 중 난 사고였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시지는 않으셨는데 넘어지시면서 머리 쪽을 부딪혔고 좀 정신이 얼얼해지신 것 같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청천벽력같이 어머니는 악성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으셨지요.

자식을 너무 애지중지 키우면 오히려 망칠 수가 있답니다. 엄청 공 들인 첫째보다 둘째 셋째가 더 효도하고 더 잘 되는 경우도 많이 보입니다. 자식교육은 부모맘 같지 않은 것이지요.

그렇게 서울에서 뇌수술을 몇 차례 받으시고,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시고 어머니를 옆에서 직접 간호하셨으나 1년 반 정도 지나 결국 세상을 등지시게 되었습니다. 십몇 년 전부터 두통이 너무 와서 머리가 깨질듯하는 게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진통제로 달래 시기만 하셨었죠.

그럴 때 빨리 병원에 가서 검사라도 더 자세히 받았다면 하는 후회가 너무나 듭니다. 뇌수술은 너무나 끔찍합니다. 성격이상이 와서 주변 사람들을 너무나 힘들게 하지요. 오히려 팔다리 같은 쪽을 못쓰면 모를까 정말 뇌를 손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하더라도 저런 상태까지 되도록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제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이게 모두 장남인 본인의 안정적이지 못한 직장생활과 결혼하지 못한 죄 등이 누적되어 결국 어머니에게 죗값을 병으로 주신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지금도 한편에 쌓여있지요.

오랫동안 같이 생활했고 익숙하니까 표현을 안해도 다 알거야 하지만 결론은 '그냥 다 모른다' 입니다. 

집안에 여자라고는 어머니 혼자였는지라, 식사 차리는 것과 설거지 등을 할라치면 그 양이 얼마나 많을까요. 삼시 세 끼를 그렇게 어머니 혼자서 주방일을 다 하신 겁니다. 그 당시 철이라도 들어서 조금씩 거들어 드렸더라면 하는 후회도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떤가요.

남자가 주방일은 하지 않는 거다 라고 만류하시지요. 언젠가는 그러시다가 밥 먹고 누워만 있지 말고 그릇이라도 좀 치워줘라 하시면서 화를 내신적도 있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까요. 남자 네 명의 먹을 것을 혼자서  다 차리고 치우고 정리까지 매 세끼를 평생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으니, 저라도 딴 데로 아마 도망을 갔을 겁니다. 

어머니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시고 또 실제로 잘하십니다. 각종 축제 때마다 참석하셔서 굵직한 상들을 많이 타셨고 실제로 들어봐도 너무 잘 부르십니다. 언젠가는 음반을 한번 내고 싶다 하시면서 돈 천만 원 정도 든다 하시면서 눈치를 보시던 때가 생각나네요. 

본인을 무조건 희생하는 것은 그가 돌보는 사람에게도 길게 볼때는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본인이 행복해야만 그 사람도 오랫동안 잘 돌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었다고 생각하니 그깟 돈 한번 모아서 해드릴걸 하는 마음 또한 듭니다. 어머니도 친구분들하고 국내는 간간히 여행을 다니신 듯한데 해외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이 또한 마음에 너무나 걸립니다. 그래서 지금은 가끔 홀로 되신 아버님과 자주 해외여행을 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언제나 후회는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을 때만 드는 걸까요. 그전에 후회가 없게끔 오히려 도가 넘치게끔 해 드리지 못하는 걸까요. 그게 인간의 인생이라고 한다면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있을 때 잘해라" 라는 말이 확 와 닿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유 말고는 다른 아무런 이유가 없답니다. 

이런 지나간 후회의 마음을 달래고 다시 한번 잘해보자는 느낌이 들도록 이 책은 마음을 토닥여 줍니다. 스님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은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고충을 상담해주고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음에 담아둔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듯 치료해 주고 마음에 평화를 줍니다.

치유를 주는 이 책으로, 패륜과 돈에 얽힌 사건이 판을 치는 지금,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준 부모님의 마음을 좀 더 헤아릴  줄 아는 그런 따듯한 세상을 기대해 봅니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온전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 스님의 4년 만의 신작!혜민 스님 4년 만의 신작에는 완벽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 나 자신과 가족, 친구, 동료, 나아가 이 세상을 향한 온전한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 안에는 완벽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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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만화박물관 전경입니다. 날아라 슈퍼보드가 매달려 있네요. 어린이들을 위한 캐릭터들이 엄청 많습니다. 어른에게는 추억의 동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곳입니다. 

싱그럽고 봄볕 따듯한 오월의 하늘을 보고 있으면 집이나 사무실에서만 있는다는 게 너무나 잔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을 살아가는 중에 왠지 많이 밑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지요. 날씨가 좋은 날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만 나쁜 날에는 또 한 곳에서 조용히 차 한잔 마시는 것이 더 좋다고도 느끼지요.

한참 동안은 화창한 날이 었으나 만화박물관을 찾은 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기온도 많이 떨어져서 운전을 하면서도 겉옷을 입고 있어야 할 정도지요. 부천은 가볼 곳이 참 많은 도시인 듯해요. 인구도 거의 50만을 넘어 백만 수준에 육박할 거로 보이고요.

1층 화장실은 어린이놀이방 같습니다. 아파트인지 화장실인지. 이런 곳에서 그냥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재미있는 화장실입니다. 꼭 한번 이용해 보세요.

 

 

생각했던 것보다 큰 도시인 것은 맞네요. 어렸을 적에는 만화를 참 많이 본 듯합니다. 그 당시 <소년중앙>이라는 어린이 잡지는 매달 나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기쁨이 컸었죠. 아버지가 퇴근 시에 그 책을 가져왔을 때 책 외에도 부록으로 만들기 공작 같은 게 있었습니다.

속 내용의 만화도 좋지만 종이로 뭔가 만드는 재미가 더 좋았던 듯합니다. 또한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책으로는 <바벨 2세>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아이와 곁에 쫓아다니는 표범인지 개인지 하는 동물이 있었죠. 그와 대결을 벌이는 악당 <요미>도 있었고, <포세이돈>이라는 로봇도 나왔습니다.

텔레비젼에서는 박치기왕 김일의 프로레슬링이 중계중입니다. 저 테레비는 천일테레비 아닌가요? 양쪽으로 미닫이 문처럼 열어야 화면이 나타나죠. 창문을 통해서 그 옛날 모습을 몰래 엿보니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시리즈로 나왔었는데 참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손을 통해서 전기적인 충격파를 발사해서 악당들을 마치 전기 통닭구이가 되게 만드는 능력을 참 부러워도 했습니다. 내 손에서는 저런 게 나오게 할 수 없을까 하는 기특한 생각도  했었지요.

특히, 주인공이 등 뒤로 총을 맞고 쓰러졌을 때 가슴 앞쪽으로 총알 세 개가 밀려져 나오면서 오히려 살아나는 장면은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다소 징그럽고 공포스러운 느낌이지만 당시 흑백 만화로 그려졌을 때는 뭔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잘 팔리는 책 조선왕조실톡입니다. 태정태세문단세~ 조선시대 왕을 외우던 주문이지요. 발아래의 모습은 오색빛깔의 프로젝터로 쏜 형상인데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리지요. 

바벨탑을 에워싼 모래바람 속에서 이루어지는 악당과의 대결구도가 참 흥미진진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만화책도 좋았지만 집에 전축이 있어서 만화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듣는 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지금은 초등이지만 그땐 국민학교라는 호칭으로 불렸죠.

 <마루치 아라치>, <전자 인간 337>, <로버트 태권브이> 등등 당시 초등학생의 마음을 휘어잡은 만화영화 들었죠. 지금의 마블 어벤저스 히어로와 같은 동급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학교 가서도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모여서 주제가를 합창으로 부르면서 대단히 집중했었던 생각이 나네요.

만화가 윤승운의 맹꽁이서당입니다. 캐릭터의 모습들이 너무나 친근했고 인간적이었습니다. 전시물에 가까이 다가가면 만화가 시작됩니다. 윤화백의 유명한 <로봇 찌빠> 도 생각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좀 유치해서 고개를 젓게 되지만 어쨌든 당시엔 그렇게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추억들을 새삼 회고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을 찾은 것이겠죠. 이 곳에도 주차장은 널찍해서 좋습니다. 유료인데 30분에 4백 원 정도이지요.

그나마 좀 싸다고 느낄 수도 있지요. 다른 곳은 대부분 무조건 삼천 원 받는 곳도 많더군요. 물론 방문시간이 길어지면 더 내게 되지만 말이죠. 광장 이곳저곳에는 각종 캐릭터 모형과 인형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치가 돼있네요. 뽀로로 인형이 정문에 있고요, 트랜스포머, 저팔계, 날아라 슈퍼보드 캐릭터들도 보이네요.

어디를 그렇게 가시나요. 이리와서 저하고 사진 한장 하시지요. 만화도서관 옆에는 이런 느끼한 인형들이 앉아있습니다. 옆의 의자에는 여자캐릭터도 있네요. 옆에 앉으면 말걸을거 같아요.

입장료는 성인이 5천 원 정도입니다. 2,3,4층 정도가 전시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초창기 우리나라의 만화 시작 시기부터의 모습들이 보이고, 각 만화가들이 사용하던 필기구 같은 것을 볼 수 있게 해 놨네요. 특히, 만화가 길창덕의 파이프 담배와 담뱃갑이 인상적이었고 담배를 하루에 5갑씩 피웠다네요.

말년에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하고요. 창작의 고통이 정말 대단하구나를 엿볼 수 있었어요. <꺼벙이>, <순악질 여사> 같은 만화가 그의 대표작인데 참 재미있었습니다. <주먹대장>이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현재 영화 중에 <헬보이> 시리즈가 있잖아요. 

박물관 입구의 사진촬영의 독보적 존재인 뽀로로입니다. 가슴의 P는 혹시 펭귄의 이니셜인가요 뽀로로의 이니셜인가요. 어린이들의 뽀통령, 어벤져스와 맞짱을 뜨는 유일한 캐릭터죠.

그 주인공 오른손이 엄청 크지요. 그런데 수십 년 전에 이미 우리의 주먹대장의 주먹이 모티브가 된 게 아닌가 추측도 해봅니다. 큰 오른손 주먹이 캐릭터의 장점이 된 만화들이죠. 1층 화장실의 벽에도 온갖 만화로 도배가 되어있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화장실은 아마 이 곳이 처음일 거 같습니다.

세면대까지도 만화 배경으로 그려져 있을 정도니까요. 전시장은 주로 어린이들이 직접 체험해보는 코스들이 많습니다. 컴퓨터 그리기 펜으로 직접 화면에 그려보기도 하고요. 현대의 만화는 웹툰으로 까지 발전해서 영화로까지 상영되지요. <신과 함께>, <이끼> 등 대작들도 속속 보입니다. 

박물관 뒤편 한적한 공원에는 이렇게 과격한 인형들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비보이의 역동적인 모습이 금바이라도 벌떡 일어날 듯 합니다. 저 복근은 당연히 만든거겠지요? 찰흙으로요.

옛날에는 펜촉으로 일일이 그렸다는 데에 엄청난 막일였겠는 반면 지금은 그나마 디지털화되어 좀 수월하게 작업하리라 보입니다. 보이는 그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스토리도 더 작품에 중요성을 좌우하기도 하죠. 현대 공포만화 <옥수역 귀신>은 좀 섬찟해서 잠깐 보고 지나쳤습니다.

장르도 이제는 세분화되어 공포물도 많이들 보는 것 같아요. 평범한 이야기는 더 이상 매리트가 없기에 좀 더 자극적인 것이 나오는 것이지요. 2층에는 도서관도 있는데요. 물론 만화들만 꽂혀 있고요. 정말 많더군요. 더구나 만화책을 보는 관람객들이 엄청 많습니다.

미래의 이상향. 60평 아파트보다 더 살고 싶은 곳입니다. 마음이 너무나 정화되는 Peace ! 앙증스런 화분들과 소쿠리들. 혹시 겨울에 찬바람이 저 문틀로 들어오면 안되는데요. 추운건 싫어요. 분위기는 좋지만 난방은 빵빵하게 되야지요.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서 만화책을 쌓아놓고 만화 삼매경에 빠진 모습이 정말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박물관 광장 쪽에도 여러 가지 재미있는 캐릭터 모형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고요. 뒤쪽으로 가니 전통체험마을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초가집과 기와집들이 있는데 싱그런 나무들과 어울려있고 조그만 화분들로 둘러싼 모습들을 보니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느낌이 확 듭니다. 나중엔 이렇게 집을 짓고 마루 평상에 누워서 곤한 낮잠을 자고 싶을 정도입니다. 체험마을 뒤쪽에는 주말농장으로 각종 채소들을 재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네요. 

주말농장을 할 수 있는 조금만 텃밭들입니다. 각자 분양된 밭에 상추, 고추, 채소들을 직접 재배해서 먹는 맛은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평일날 정신없이 일한 스트레스를 이곳에서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겠지요.

조그맣게 구역이 나누어져 있어 그 앞에 밭의 주인 이름 팻말이 죽 놓여 있고요. 정말 가슴이 차분해지고 막 재배하고 싶게끔 만드는 그런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곳입니다. 만화박물관과 전통한옥체험마을과 주말농장의 모습까지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힐링이 되는 그런 발걸음이었습니다. 

 

 

한국만화박물관

경기 부천시 길주로 1 (상동 529-36)

place.map.kakao.com

 

여성의 글쓰기는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했지요. 여성이 쓰는 글, 그리고 남성의 것보다 부족한 글. 이런 편견을 깨버린 <여성작가 SF모음집>입니다.

파출리 박애진 전혜진 권미정 양원영 남유하 아밀 이서영 전삼혜 박소현 지음 / 온우주 발행 

책을 빌리면서 새까만 표지에 여성작가인데 그 장르가 SF이다라는 문구가 왠지 모르게 궁금증을 확 일으킵니다. 여성작가들이라면 국내에도 유명하신 분들이 계시지요. 최근 빅 히트작인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 <7년의 밤>의 정유정 작가 분들이 제일 먼저 생각나네요.

워낙 이야기의 흡인력이 굉장해서 한번 손에 쥐면 놓기가 어려울 정도이니까요. 이런 베스트셀러를 써내는 분들이 있는 반면 이번 SF모음집은 베스트보다는 독특함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남성 작가든 여성작가든 구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독자들에게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는지요. 

여하튼 금번 책에는 10명의 여성 SF작가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았지요. 솔직히 이름을 주욱 보는데, 익숙한 분들은 눈에 띄지 않더군요. 그래서 더욱 그 내용을 읽어보게 만드는 것일 겁니다. 그 중에서 <치킨과 맥주>라고 하는 이야기가 눈에 띄었고 작가분은 권민정 씨라고 하네요.

다른 제목보다는 치킨하고 맥주를 가지고 어떻게 SF라는 스토리를 이끌어낼지가 궁금하더라구요. 우리가 흔하디 흔한 소재를 가지고 <아바타>급의 이야기를 해주실 건지 새삼 기대 반 걱정 반이 되게 마련이지요. 제가 너무 큰 기대를 한 건 아닐는지.

최초의 SF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가 여자임이 알려지자 "어린 여성의 병적인 상상력"이란 꼬리표가 붙었고 1970년대에 재평가가 되었답니다.

이야기는 젊은 여자 주인공 '우영'이 치킨 중에서도 간장치킨만을 좋아합니다. 시대 배경은 아무래도 기술이 좀 많이 발달한 한국의 미래랄까요. 야근이 없는 날 퇴근해서 집 근처 치킨집인 '간간 치킨'에서 간장치킨과 그리고 근처 편의점에서 캔맥주 세 개 정도를 비닐봉지에 담아 집에 와서 그 맛을 음미하는 게 큰 낙입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의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입가에 미소가 번질만한 환상의 조합이지요. 방금 튀겨져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닭의 껍데기와 그 속의 하얀 속살 맛은 그야말로 환상이지요. 게다가 시원한 수입맥주 한 모금은 그야말로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 일 겁니다.

단지, 지나친 과음은 통풍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하니 좀 가려서 조금씩 드셔야겠지요. 이런 주인공은 자주 치킨과 맥주를 사러 가는데요. 그 중간의 골목길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떤 젊은 녀석이 가슴을 손으로 스치고 도망가는 봉변을 당하게 되죠.

그다음에는 늙은 노인과의 신경전으로 지팡이로 다리를 얻어맞기도 합니다. 중년 같은 남자에게는 성희롱적인 발언으로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치킨을 구매하러 가는 골목길에서 계속되는 해코지와 폭력을 반복적으로 묘사합니다. 

여성 작가들은 '여성적'이지 않으며, '여자다운' 글을 쓰지 않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다운' 글을 쓸 뿐입니다.

골목길의 벽은 평상시에는 희뿌연한 시멘트 벽이지만 SF적인 내용인지라, 벽에서 광고들을 해대고 있습니다. 주로 여성을 위한 대출광고가 많이 나오죠. 또한 주인공의 스마트폰에는 '아이리'라는 인공지능 비서가 있어서 말벗동무가 되고 있지요. 그런 와중에 괴한에게 옆구리에 칼로 찔리기까지 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한 세명 정도의 건장한 남자들에게 봉변을 당하게 되는데, 이들은 대출광고회사의 직원인 듯하고 주인공에게 간장치킨을 그동안 사 먹은 대가로 돈을 갚으라고 합니다. 이에 영문도 모르고 격분한 우영은 어디에서 힘이 나는지  그 일당들을 잔인하게 처리해 버리지요.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후 다시 집에 와서 치킨과 맥주를 먹으려 하는데 그 맛이 그다지 달지만은 않습니다. 벽에 나타나는 광고들은 현재 영화들에서 보아온 홀로그램이나 손으로 터치하면서 넘겨 볼 수 있는 그래픽 같은 장면이 연상됩니다. SF이기에 이런 장면이 오버랩되는 것은 당연한 듯합니다.

한국의 젊은 여자가 주인공이면서 그가 계속되는 억센 남자나 노인이나 젊은 사람에게 억압과 갖은 수모를 당하는 것이 현재의 한국사회를 암시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약한 여성의 차별대우, 언제나 여자는 남자보다 못하고 한수 아래인 것으로 깔고 보는 그런 모습들 말입니다.

 

 

10명의 작가들은, 지금 여기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다른 시대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들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렇듯 현대 여성들이 여성이기에 받아야만 하는 갖은 수모와 모욕, 불평등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참지 못하는 그 분노와 폭발을 하는 장면에서는 영화 <악녀>의 김옥빈을 연상시키죠. 검은색 슈트로 무장한 채 난도질을 해대는 그 어마 무시한 칼부림은 예의 없는 남성에 대한 항거의 결과 아닐까요.

일제시대의 '유관순'열사가 교차되는 것도 일리가 있겠네요. 한 인간의 울분과 억울을 잔잔한 필체로 마지막에 토해내는 것은 어떤 속 시원함과 함께 갈증에 대한 사이다 같은 맛을 보여줍니다. 이런 소재로 한국의 SF영화를 제작해도 괜찮을 듯하네요.

치킨과 맥주는 우리 직장인과 착한 소시민들이 어려운 하루를 마감하면서 기분전환을 위한 하나의 축하의식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주기적인 축제의 의식의 중간에서 브레이크를 걸어 그 행위를 금지하게 만드는 태도는 벼룩의 간을 빼먹으려는 간사한 계략일 것입니다.

소소한 즐거움을 봉쇄하고, 자기의 굶주린 야욕을 채우려는 수많은 사기를 위장한 매체와 인간들의 행태에 우리 모두는 분노하게 됩니다. 약자의 약점을 이용하여 본인들의 배를 채우려는 듯한 야만적 행위를 간접적으로 비꼬는 그런
의미 있는 이야기는 심히 공분을 느끼게 만듭니다.

SF모음집은 아마도 이러한 여성을 주제로 하여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 묶인 책일 겁니다. 게다가 SF 장르이니 그것이 주는 상상력이 독특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일면, 허황된 듯한 배경과 스토리 같을 지라도 나름 신선하게 다가오고 의미 또한 담겨 있지요.

가끔은 이렇게 색다른 부류를 접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모쪼록 앞으로는 이런 종류의 괜찮은 생각을 자극하는 글들이 계속 발매되기를 기대합니다.

 

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

국내 최초의 여성 SF 단편집이다. 여성 작가의 SF 단편을 모집하며 주제나 내용에 상관없이 그저 작가가 여성일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동시대 한국 여성 작가의 SF를 광범위하게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지면이나 온라인으로 발표가 한 번 정도 되었던 작품을 다듬은 것과, 처음 발표되는 작품이 함께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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