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관심이 가게 되는 분야가 바로 독서와 관계된 책들입니다. 매주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다시 대여하는 일이 때론 즐겁기까지 하지요. 버릇처럼 돼버렸다고 할까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날이 항상 기다려지기까지 하니까 말이지요.
책을 왕창 빌렸다고 해서 다 읽는 것도 아니고 발췌독으로 하다보니 그렇게 부담이 가지는 않는 듯합니다. 예전에는 책을 빌리면 어떻게든 재미가 없더라도 다 읽어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감이 종종 있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다 보니까 굳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미있으면 다 읽는 것이고 보다가 도저히 못 읽겠다면 그 쯤에서 놓아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되는 것 같아요. 책의 목차를 보고 제일 관심 가는 챕터와 에피소드부터 읽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일 겁니다. 일단은 거부감이 들지 않다는 것이지요. 물론 소설 같은 장르는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야 이야기를 알 수 있겠지만요.
너무 서두가 길게 갔는데요. 아무튼 이번에 고른 도서는 <독서만담>이라는 제목입니다. 독서로 만담을 한다? 그 옛날 코미디언들이 명절 때에 콤비로 나와서 끝도 없이 해대는 대화가 만담 아니던가요? 요즘 책 제목은 독자들의 이목을 잘 끌도록 잘 짓습니다.
처음 접하는 저자이신데 책 내용이 상당히 유머스러움을 깔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필체는 일본의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를 떠오르게 하지요. 곳곳에 숨어있는 위트와 피식 웃음짓게 만드는 묘사와 대사들이 장점이지요. 이 책에서도 그런 웃음기를 머금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작가의 필체 스타일이 바로 해학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지요. 똑같은 상황이라도 웃기게 묘사한다는게 결코 쉽지는 않을 겁니다. 남 웃기는 게 어렵잖아요? 개그맨들이 시청자를 웃게 만들려고 얼마나 아이디어를 쥐어짜는지 아시잖습니까.
저자는 이야기의 배경을 본인의 가족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서 소재의 대부분을 찾고 있고 그 상황에서 웃음코드들을 발췌해 냅니다. 또한, 그에 파생되는 생각거리를 본인이 독서한 책들을 열거하면서 부연설명들을 하고 있지요. 먼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챕터가 관심이 갔는데요.
저자가 학교에 발령을 받아 숙소를 결정할때, 학생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같이 기거하게 되고 그곳의 나이 드신 사감이 수시로 스피커 방송을 해대는 통에 그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요. 결국엔 스피커의 선을 살짝 끊어버리는 센스로 일단락 졌는데요.
학생들을 깨울때는 10대 아이돌의 시끄러운 음악을 마구 틀지만 점심때 아무도 없을 때는 흘러간 옛 노래를 틀던 사감의 정감 있는 마음을 이해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저자 본인은 기러기 아빠의 바로 하위 버전인 갈매기 아빠라는 것도 재미있네요.
게다가 영국인 코미디언인 이안 무어가 교통체증으로 꽉막힌 영국 도심에서 벗어나 프랑스 시골마을에 정착하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많이 부러워하지요. 하지만 편안하기만 할 것 같은 프랑스 전원생활도 예상치 못하게 더 힘들더라는 말은 역시 어딜 가나 새로운 환경에서는 잘 적응하는 적응력이 있어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담배가 뭐길래라는 에피소드는 저녁을 먹고 운동을 가자는 와이프의 권유를 은근슬쩍 뿌리치고 몰래 담배를 피러 나가려다가 와이프에게 걸려서 차에 뭐 가지러 간다는 거짓말로 당황하는 상황을 재미있게 묘사한 장면입니다. 집안에서는 가장이지만 그런 파워를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와이프에 절절매는 모습이 웃음을 참기가 힘들지요.
웃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요샛말로 웃프다고 해야겠지요. 그러면서 담배에 대한 숭배론자들이 쓴 책들을 소개합니다. 담배를 피우면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그런 단점을 생각지 말고 담배의 장점만을 생각하고 맛있게 피우라는 거지요. 바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설을 저자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수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편도 있는데요. 집 현관에 있는 등이 고장이 났는데 전기에 감전될까봐 고치기를 망설이다가 결국은 용기를 내서 고친 후에 와이프한테 칭찬을 받는 얘기입니다. 남자라면 집안에서 고장 나거나 수리가 필요한 대부분의 물건들은 스스로 고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자동차까지 고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요. 실제 일본작가가 쓴 자동차 수리에 관한 책을 보면 정비소에 가서도 맞짱을 뜰 수 있다고 하지요. 행복하게 패배하는 법도 있습니다. 아내와의 냉전 중일 때 저녁에 와보니 식탁에 김치볶음밥이 놓여있었지요.
덥석 볶음밥을 먹으면 아내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 같아 참다가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는 척하지요. 다시 방에 있다가 물을 먹으려고 나와보니 아뿔싸 볶음밥을 딸이 먹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 모두는 항상 무언가에 패배를 하고 삽니다.
아내와의 싸움에서 항상 지고, 동료와 골프를 몇 타 차로 지고, 상사에 까이고 후배한테 시달리고 등등 이토록 패배의 연속입니다. 이와 더불어서 바로 위대한 위인들 중에서 1등이 아닌 2등의 패배자로 더욱 유명한 분들의 예를 듭니다. 앨 고어, 체 게바라, 루이 16세, 반 고흐, 롬멜 장군, 앨런 튜링 등 많은 위대한 패배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지치고 힘들더라도 다시 한번 힘을 얻고 살아가게 됩니다.
어려운 경제 사정에서도 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도 아내를 위해, 아들 딸들을 위해 행복한 패배자가 기꺼이 되려는 한국의 아버지들에게도 힘을 줄 수 있는 착한 도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사진 = [도서] 독서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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