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대문 형무소 매표소를 통과한 후 제일 처음 관람하게 되는 역사전시관입니다. 형무소가 걸어온 발자취를 엿볼 수 있지요.

안녕하세요 행복한 줄 긋기입니다. 지난 현충일에는 오후에 비가 내릴 것 같다는 기상예보가 있었습니다. 아파트 바깥을 내다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기형식의 태극기가 얼마나 걸려 있는지를 보질 못했네요. 봤는데도 관심을 안 뒀으니 모르고 지나쳐버린 것 일 수도 있고요.

엘리베이터에도 현충일에는 조기를 가정마다 꼭 걸어주시기를 바란다고 안내장이 붙어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애국심이 어느 정도인지 살짝 엿보는 기회이기도 하지요. 저 역시 집에 달 수 있는 태극기가 없네요. 인터넷에서 당장 구매를 해봐야겠습니다.

아점을 먹자마자 어딘가 또 바람을 쐬고 싶은 충동이 앞서더군요. 이미 오후가 시작되는 시각인지라 멀리 갈 수는 없으니 서울 쪽에서 찾아보기로 한 곳이 바로 서대문형무소입니다. 물론, 제가 이 곳에 들어가려고 하는 건 아니고요.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습니다.

자가용으로 한 40분이면 가는 거리이고요. 서대문이면 시내의 중심에 있는 곳인데 생각에는 조그맣게 흉내만 낸 것이 아니겠느냐 상상했는데 웬걸 저의 상상을 완전히 깰 정도로 그 공간이 상당히 넓었습니다. 심지어 이곳에서 아이들끼리 축구시합을 해도 될 정도로 크고 탁 트인 대형 종합 운동장 같았습니다. 

▲ 형무소에 수용되었던 독립유공자들의 인적표입니다. 방 전체 사방으로 그들의 모습이 담겨있어 당시 생활상을 들여다 볼 수 있지요.

 

 

주차장은 후불이 되겠고요. 입장료는 어른 3천 원인데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단위의 인파로 인해 매표소 입구 전 약 백 미터 이상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상당히 많아서 엄청 북적거렸지요.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큰 감옥을 왜 이리들 보러 오는 건지 심히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입장하자마자 커다란 대형 태극기와 애국열사들의 모습을 담은 초대형 현수막들이 많이 걸려 있습니다. 당연히 관람객들의 사진 촬영으로 도저히 저의 차례를 기다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빨간색 벽돌로 세워진 대형 건물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는데 이런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대형 부지를 다 사용해서 유지를 해야 되는지 조차도 의심이 갑니다.

이 곳에 서민들을 위한 아파트를 세워도 수십 동을 건축할 수 있겠더군요. 사방으로 둘러쳐진 빨간색 벽돌의 울타리는  그 높이가 상당하여 죄수들의 탈출은 불가능한 듯 보입니다. 일제시대에 이런 철옹성 같은 곳에서 노역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는 데에 크나큰 상실감이 들었으리라 여겨지네요.

하지만 엄청난 부지에 답답함은 덜 했을 것 같네요. 정 중앙에 있는 전시관에는 일제시대 때부터의 형무소의 역사와  이 곳을 거쳐간 애국지사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각종 사진들과 소품들을 보여줍니다. 부모님들과 같이 온 아이들은 부모들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기 일쑤이지요.

▲ 한 명 간신히 누울정도의 어두컴컴한 독방은 그 답답함과 지루함, 공포감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역사책에서나 읽어보았던 여러 지명과 인물들을 발견할 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반가워합니다. 아이들이 하나라도 놓칠세라 부연설명을 해주는 아버지의 노고도 가히 존경스럽습니다. 많은 인파로 차례대로 순서를 기다리면서 관람을 해야  할 정도이지요.

1,2층에는 우리나라의 항일운동에 대한 사진으로 대부분 전시되어 있고 지하 1층에는 감옥에 대한 내용과 고문의 흔적들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독방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한 사람만 딱 누울 정도의 넓이에 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혀옵니다. 그 당시에 냉, 난방이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좁은 공간에서 생리를 해결하면서 아무 기약 없이 사계절을 견딘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보다도 못한 삶이었을 것입니다.

일제에 항거한 분들이나, 독재에 맞서서 저항한 민주열사들, 그리고 부패정권의 조작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쓰고 끌려온 분들이 이런 인간 이하의 시설과 대접을 받아가면서 생활했음을 추측하면 몸서리가 쳐집니다. 과연  그 시절에 태어나 이런 고초를 겪었다면 어땠을까.

하루라도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시설의 뒤쪽으로는 한센병 일명 문둥병에 걸린 사람만 수용하는 한센병사가 저 멀리 높은 곳에 위치합니다. 아래쪽으로는 무슨 미로 같은 곳이 있는데 격벽장이라고 일종의 운동을 위해서 만든 시설이죠.

▲ 옥사 중앙에 태극기와 애국지사의 대형 현수막이 자리하고 있어 관람객들의 포토죤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벽과 벽을 촘촘히 세워놓아서 서로 간에 대화를 하지 못하도록 한 건물입니다. 인간의 최소한의 기본권리를 최대한 차단하려는 일제의 의도된 만행이지요. 좀 더 구석진 곳으로는 사형장이 있습니다. 커다란 미루나무가 세워진 내부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분들을 직접 시행하던 곳이지요.

참관인들이 참석한 곳에서 덩그러니 늘어진 밧줄은 그야말로 비참한 그 시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얼마나 많은 안타까운 인물들이 거쳐갔을지 차마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옆에는 시구문이라고 하여 사형이 집행된 시신을 외부에 반출하기 위한 통로가 있지요.

지하 통로 같은데 외로운 메아리만 울려 퍼집니다. 11옥사, 12옥사라는 곳은 실제로 수감된 감방이 있는 곳이지요. 우리가 영화에서 보면 죄인을 끌고 지나가는 복도를 보게 되는데 그런 식의 건물입니다. 하지만 철문이 아니라 나무로 된 다소 허술하고 비좁은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요.

각 방마다 실제 방에 투옥되었던 애국지사와 민주열사들의 대략적인 생애를 도표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마다 들어가 보면 그분들의 발도장과 생애 업적들을 직접 관찰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열사와 지사들이 계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 격벽장의 일부 모습입니다. 운동삼아서 이곳을 왔다 갔다 했을텐데 그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처음 듣는 분들이 꽤나 많았지요. 조선말의 의병활동부터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생존해 있는 분들까지 모두 한 번씩은 들어 봄 직한 이름이었지요. 어떤 전시관에는 이 곳에 수용된 수감자들의 수형 사진들을 방 전체에 빽빽이 붙여놓은 곳도  있습니다.

흑백사진으로 얼굴 앞쪽과 옆면 사진 대부분 머리가 짧은 스포츠 형태로 찍혀 있습니다. 다들 젊은 나이에 끌려와서 갖은 고생을 했을 것을 생각하니 현재의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나라를 위한 분들이 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서대문형무소는 기피해야 할 역사관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번씩 거쳐서 느껴야 할 역사의 현장이더군요. 오후 늦게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끝까지 관람을 하니 2시간 반이 훨씬 지났습니다. 많이 걷지는 않았지만 서서 관람을 하다 보니 발목이 뻐근하기도 합니다.

주차장 출구를 나오니 주차료는 4천6백 원 정도 나옵니다. 입장료보다 더 비싸지만 돈을 더 주고라도 이 곳 역사관은 방문할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이들의 역사교육에도 좋고 넓은 부지에 가족들의 나들이에도 더없이 탁월한 장소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관람이 되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와 선열들의 자주독립정신을 배울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1995년 공사를 시작하여 1998년 11월 개관하였다.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있으며 3·1운동 직후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어 숨을 거둔 지하 옥사와 감시탑, 고문실, 사형장, 옥사 7개동, 역사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관사와 고문실로 쓰이던 역사전시관에는 영상자료실, 강우규 의사의 의거를 재현한 매직비전, 형무소역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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