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일에 보려는 영화 관람객들이 갑작스럽게 증가한 듯합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 때도 선 예약이 2백만 명이 넘어섰었고 보러 온 사람들도 휴가 또는 반차까지 써가면서 봤었지요. 이번 기생충도 이미 뉴스에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효과를 톡톡히 받은 걸로 보입니다.
외국 관람객들이 기립박수를 몇 분 동안 쳤다는 소식까지 접하니 이건 도저히 궁금증을 유발해 안 볼 수가 없는 거지요. 방송과 뉴스를 타고 퍼지는 홍보효과는 정말로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듯합니다. 지금은 인터넷과 SNS의 홍보효과가 점점 중요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TV매체의 효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이렇듯 우리 한국 영화가 칸에서 큰 상을 받은 것은 최초라고 하니 아마도 기대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이죠. 봉준호 감독 영화는 <괴물>, <살인의 추억>, <옥자> 정도가 생각이 나네요. 대부분 흥행에 많이 성공했습니다. 간간한 웃음과 해학, 페이소스, 약간의 스릴러가 가미된 느낌이죠. 당시 모두들 그래도 대박 난 작품입니다.
모두 다 재밌게 본 기억이 드네요. 괴물에서는 CG가 좀 많이 딸렸었지요. 송강호 배우하고 궁합이 잘 맞나 봅니다. 같이 여러 번 작업을 했네요. 감독과 주연배우가 서로 믿고 재밌게 촬영을 오랫동안 한다는 것도 참 복일 겁니다. 어떤 직업에서든, 작업에서든 내가 싫어하고 가까이하기 어려운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것은 큰 곤욕이고 그 결과물이 좋을 리도 없을 겁니다.
저런 행운도 아마도 서로 친하고 편하고 믿고 신뢰감이 형성돼 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 점은 참 부럽습니다. 개봉일의 조조 타임인데도 거의 반 이상 좌석이 찬 듯하네요. 4백 석이 넘는 큰 공간인데 어느새 로얄석들은 꽉 들어찼습니다. 희한한 것이 영화 시작 전에 광고를 하는데 영상은 안 나오고 음성만 나오네요.
혹시 전기세를 아끼려고 하는 건지, 불필요한 광고라는 뭇매를 피하려는 좋은 꼼수인지 모르겠네요. 기다리는 시간 15분 이상을 핸드폰 보다가 스크린 한번 슬쩍 보다가 하게 하네요. 라디오 듣는 줄 알았네요. 시간 되자 곧바로 본 영화 시작하는 것은 괜찮았습니다.
일단, 이 영화에서 CG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겠네요. 한국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옷에 배는 반지하방과 이태원의 부잣집 동네를 연상시키는 대저택이 주무대이지요. 위층에서 쏴주는 와이파이를 지하에서 이리저리 잡으러 돌아다녀야 할 정도의 세간살이가 보입니다.
반지하. 창문과 바로 거리가 일직선으로 붙어있는 곳. 차량이 한번 지나가면 흙먼지가 들어오고, 헤드라이트 불빛이 곧바로 자는 사람 눈으로 비치는 곳이지요. 혹은 몰래 노상방뇨로 인한 불편은 또 어떻습니까. 게다가 폭우가 있는 날이면, 방에 물이 어디까지 찰지 목숨을 걸고 잠을 자야 하는 그런 상황 말입니다.
좌변기가 한 칸 위쪽에 있어서 고개를 숙일 정도로 볼일을 봐야 하는 그런 구조. 그런 곳에서 네 식구가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는 거지요. 학력 졸업장까지 명문대로 위조해서 IT기업 사장의 딸의 과외를 얼떨결에 맡게 되는 아들. 이런 좋은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집에 서서히 네 식구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기존에 그 부잣집에서 근무하던 분들을 하나씩 쫓겨나도록 하면서 그 자리를 하나씩 꿰차는 식이지요. 과연 이들이 만끽하려는 상류계층으로의 생활이 얼마나 갈 것이며 그게 지속될 수 있을까요. 이 영화에서는 현 한국의 시사되는 부분들을 간간히 표출해서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툭툭 던져버립니다.
그러한 쨉들이 들어올 때 우리들의 마음에 한 번씩 펀치를 날리며 생각과 느낌을 갖도록 해주지요. 사장이 느끼는 것 중 지하철 타는 인간들한테는 뭔가 다른 냄새가 난다든지, 자기가 고용한 운전수의 태도에서 어느 정도의 선을 넘지 말라는 식의 언행이 그것이지요.
자기가 속한 상류계급과 그저 하인과 같은 하류 서민들과의 두터운 장벽을 치고 그 경계선을 고수하려고 합니다. 송강호 가족들이, 캠핑을 떠난 사장의 집에서 보란 듯이 양주를 마셔대는 장면은 서민의 울화가 한꺼번에 터지는 포효 같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큰 저택에서 멋진 경치를 앞에 두고 언제 한번 멋지게 살아보겠냐 하는 바람을 잠깐이나마 실현한 것이죠. 바로 이게 부자다 라는 거지요. 맞습니다. 그야말로 잠깐이지요. 그 뒤에 더 크게 돌이키지 못할 사태는 우리 관객들은 예상을 하고 있지만요.
여하튼 그때만큼은 잠시 부자가 된 서민의 울부짖음이 불안해 보였습니다. 위조로 시작된 알바가 점점 확대가 되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지만 결국엔 파멸이 올 거라는 건 동서고금을 통해서 너무나 당연한 진리 아니던가요. 중간에 잘린 오래된 가정부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이 저택에 감추어진 비밀이 드러나자 그 종말은 급속도로 진전이 됩니다.
예상치 못한 캐릭터의 등장으로 서로 치고받는 참혹한 신체 가혹 행위들이 유발됩니다. 우리의 가장 송강호는 아들의 꾸준한 노력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경지에 까지 다다르지요. 대저택을 살만한 부를 이룰 때까지 말이지요. 그게 언제일지,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지요.
대사 중에는 <계획>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아들이 계획성이 있다. 아버지는 그다음 어떤 계획이신가요? 우리는 너무 계획을 하고 산다. 계획을 하니까 자꾸 어긋나는 일이 발생한다. 계획이 없으면 이런 듯 저런 듯 물 흘러가듯 살면 된다고 기생충 아버지는 말하지요.
수많은 자기 계발서나 위인들은 대부분 단기뿐 아니라 인생의 장기계획을 다 짰다고 했습니다. 정말 계획이 없어서 기생충 아빠처럼 하류의 인생을, 가난을 대대로 안고 가는 걸까요? 정답은 저도 모릅니다. 둘 다 틀린 말도 맞는 말도 아닐 듯합니다.
하지만 계획이 있으면 조금은 더 삶을 충실하게 보낼 수는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무계획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인생이 꼭 실패한 인생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본인 나름의 인생이 있는 것이지요. 특히나, 나와 상대방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관점이 틀리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상대에게 상해를 가하는 행동까지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기생충의 본성과 그 특징을 모두 보균하고 있는 기생충 보균자들 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한국의 세태를 예리하게 표면화시키고 곳곳에서 웃음과 느낌과 몰입을 2시간 동안 전달해준 <기생충>은 꽤 재미있는 영화임에 틀림없습니다.
단, 15세 보다는 청불이 나을 듯합니다. CG로 도배된 근래의 외국영화만 보던 지루함에서 벗어나, 다소 어둡고 은은한 색감과 짜임새 좋은 한국영화를 오랜만에 만나서 참 반가웠습니다. 자막이 올라갈 때 어? 이건 뭐지? 하는 표정의 사람들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오로지 느낌은 관객 본인의 느낌 그 자체일테니까요.
(사진=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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