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리 박애진 전혜진 권미정 양원영 남유하 아밀 이서영 전삼혜 박소현 지음 / 온우주 발행
책을 빌리면서 새까만 표지에 여성작가인데 그 장르가 SF이다라는 문구가 왠지 모르게 궁금증을 확 일으킵니다. 여성작가들이라면 국내에도 유명하신 분들이 계시지요. 최근 빅 히트작인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 <7년의 밤>의 정유정 작가 분들이 제일 먼저 생각나네요.
워낙 이야기의 흡인력이 굉장해서 한번 손에 쥐면 놓기가 어려울 정도이니까요. 이런 베스트셀러를 써내는 분들이 있는 반면 이번 SF모음집은 베스트보다는 독특함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남성 작가든 여성작가든 구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독자들에게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는지요.
여하튼 금번 책에는 10명의 여성 SF작가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았지요. 솔직히 이름을 주욱 보는데, 익숙한 분들은 눈에 띄지 않더군요. 그래서 더욱 그 내용을 읽어보게 만드는 것일 겁니다. 그 중에서 <치킨과 맥주>라고 하는 이야기가 눈에 띄었고 작가분은 권민정 씨라고 하네요.
다른 제목보다는 치킨하고 맥주를 가지고 어떻게 SF라는 스토리를 이끌어낼지가 궁금하더라구요. 우리가 흔하디 흔한 소재를 가지고 <아바타>급의 이야기를 해주실 건지 새삼 기대 반 걱정 반이 되게 마련이지요. 제가 너무 큰 기대를 한 건 아닐는지.
이야기는 젊은 여자 주인공 '우영'이 치킨 중에서도 간장치킨만을 좋아합니다. 시대 배경은 아무래도 기술이 좀 많이 발달한 한국의 미래랄까요. 야근이 없는 날 퇴근해서 집 근처 치킨집인 '간간 치킨'에서 간장치킨과 그리고 근처 편의점에서 캔맥주 세 개 정도를 비닐봉지에 담아 집에 와서 그 맛을 음미하는 게 큰 낙입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의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입가에 미소가 번질만한 환상의 조합이지요. 방금 튀겨져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닭의 껍데기와 그 속의 하얀 속살 맛은 그야말로 환상이지요. 게다가 시원한 수입맥주 한 모금은 그야말로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 일 겁니다.
단지, 지나친 과음은 통풍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하니 좀 가려서 조금씩 드셔야겠지요. 이런 주인공은 자주 치킨과 맥주를 사러 가는데요. 그 중간의 골목길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떤 젊은 녀석이 가슴을 손으로 스치고 도망가는 봉변을 당하게 되죠.
그다음에는 늙은 노인과의 신경전으로 지팡이로 다리를 얻어맞기도 합니다. 중년 같은 남자에게는 성희롱적인 발언으로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치킨을 구매하러 가는 골목길에서 계속되는 해코지와 폭력을 반복적으로 묘사합니다.
골목길의 벽은 평상시에는 희뿌연한 시멘트 벽이지만 SF적인 내용인지라, 벽에서 광고들을 해대고 있습니다. 주로 여성을 위한 대출광고가 많이 나오죠. 또한 주인공의 스마트폰에는 '아이리'라는 인공지능 비서가 있어서 말벗동무가 되고 있지요. 그런 와중에 괴한에게 옆구리에 칼로 찔리기까지 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한 세명 정도의 건장한 남자들에게 봉변을 당하게 되는데, 이들은 대출광고회사의 직원인 듯하고 주인공에게 간장치킨을 그동안 사 먹은 대가로 돈을 갚으라고 합니다. 이에 영문도 모르고 격분한 우영은 어디에서 힘이 나는지 그 일당들을 잔인하게 처리해 버리지요.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후 다시 집에 와서 치킨과 맥주를 먹으려 하는데 그 맛이 그다지 달지만은 않습니다. 벽에 나타나는 광고들은 현재 영화들에서 보아온 홀로그램이나 손으로 터치하면서 넘겨 볼 수 있는 그래픽 같은 장면이 연상됩니다. SF이기에 이런 장면이 오버랩되는 것은 당연한 듯합니다.
한국의 젊은 여자가 주인공이면서 그가 계속되는 억센 남자나 노인이나 젊은 사람에게 억압과 갖은 수모를 당하는 것이 현재의 한국사회를 암시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약한 여성의 차별대우, 언제나 여자는 남자보다 못하고 한수 아래인 것으로 깔고 보는 그런 모습들 말입니다.
작가는 이렇듯 현대 여성들이 여성이기에 받아야만 하는 갖은 수모와 모욕, 불평등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참지 못하는 그 분노와 폭발을 하는 장면에서는 영화 <악녀>의 김옥빈을 연상시키죠. 검은색 슈트로 무장한 채 난도질을 해대는 그 어마 무시한 칼부림은 예의 없는 남성에 대한 항거의 결과 아닐까요.
일제시대의 '유관순'열사가 교차되는 것도 일리가 있겠네요. 한 인간의 울분과 억울을 잔잔한 필체로 마지막에 토해내는 것은 어떤 속 시원함과 함께 갈증에 대한 사이다 같은 맛을 보여줍니다. 이런 소재로 한국의 SF영화를 제작해도 괜찮을 듯하네요.
치킨과 맥주는 우리 직장인과 착한 소시민들이 어려운 하루를 마감하면서 기분전환을 위한 하나의 축하의식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주기적인 축제의 의식의 중간에서 브레이크를 걸어 그 행위를 금지하게 만드는 태도는 벼룩의 간을 빼먹으려는 간사한 계략일 것입니다.
소소한 즐거움을 봉쇄하고, 자기의 굶주린 야욕을 채우려는 수많은 사기를 위장한 매체와 인간들의 행태에 우리 모두는 분노하게 됩니다. 약자의 약점을 이용하여 본인들의 배를 채우려는 듯한 야만적 행위를 간접적으로 비꼬는 그런
의미 있는 이야기는 심히 공분을 느끼게 만듭니다.
SF모음집은 아마도 이러한 여성을 주제로 하여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 묶인 책일 겁니다. 게다가 SF 장르이니 그것이 주는 상상력이 독특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일면, 허황된 듯한 배경과 스토리 같을 지라도 나름 신선하게 다가오고 의미 또한 담겨 있지요.
가끔은 이렇게 색다른 부류를 접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모쪼록 앞으로는 이런 종류의 괜찮은 생각을 자극하는 글들이 계속 발매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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