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시에서 가볼만한 곳을 주욱 살펴보니 상원사와 영원산성이라는 곳이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이미 앞전에 원주 국립박물관을 세세히 훑다 보니 시간이 좀 빡빡하게 느껴지긴 합니다. 이미 해가 중천을 지나 뉘엿뉘엿 서쪽을 향해서 이동을 하고 있는 상태였지요.
사는 곳을 떠나 타지방을 여행하다 보니 제한된 시간내에서 최대한 많은 곳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시 여행자의 마음을 옥죄게 만들지요. 이런 쫓기는 듯한 여행은 솔직히 아니다고 느끼면서도 더 많은 곳을 보고자 하는 행동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종합 안내지도를 펴보고 영원산성을 찍고서 열심히 내달리게 됐지요. 이름부터가 "영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이 더욱 끌렸다고나 할까요. 저기 가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얼토당토않은 상상과 함께 말입니다. 차를 몰고 가다 보니 갔던 곳을 다시 가는 그런 느낌도 드네요.
두서없이, 정처없이 그저 끌리는 곳과 제일 가까운 곳을 우선순위로 방문하려니 왔던 길도 다시 한번 역으로 가는 불상사가 생기네요. 아까운 기름값이 자꾸 떠오릅니다. 산속으로 많이 들어가야 하는지 다소 좁은 시멘트길을 한참을 가게 되네요.
2차선도로는 아닌지라 반대편에서 차들이 오게 돼서 잠시 옆으로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하기도 하고요. 산성이면 어느 정도 주차시설도 있는 그런 곳이리라 생각했는데 자꾸만 산골짜기 같은 곳으로 마구 데려가는 느낌에 오싹합니다. 밤이 아니라 참 다행입니다.
더 이상 차는 갈 수 없는 곳인지 바리케이트가 쳐져있고 바로 옆에 조그만 주차장과 함께 안내원이 보이는데요. 일단 주차요금을 보니 세상에! 소형차가 5천 원이라는 사실. 지금까지 어디를 다녀봐도 2천 원 이상을 받은 곳은 없었는데 이건 도대체 황금으로 된 길을 깔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5천 원까지 받는지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런 오지 같은 데에 있으니까 그런 걸까요.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영원산성을 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지금 시간으로는 많이 늦을 것 같고 단순히 걷기 정도만 할 수 있는 성곽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상원사도 있는데 이 곳도 그보다 훨씬 더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너무 늦게 온 탓도 있는 것 같고요. 오후 4시가 넘어가니 그곳까지 왕복으로 갔다 오기에는 날이 어두워질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게다가 누구와 동행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산행을 하는 건데 괜히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지도를 보니 영원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2.4킬로에 편도 50분 정도라서 이 정도면 갔다 올 수는 있을 것 같았지요. 영원산성과 상원사는 아쉽지만 포기하고 영원사만 방문하는 걸로 급변경을 하였습니다. 원주의 명소 중에 영원사는 목록에 없었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시점에서 이미 주차료 5천 원을 내고 주차를 한 이상 환불하고 돌아가기에도 참 애매한 상황인 거지요. 아마 다른 분 같으면 당당히 환불받고 바이바이 했겠지만, 이놈의 결정력 부족과 과감함이 미비한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보기로 합니다.
과연 어떻게 한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는지는 훗날 역사가 증명하겠지요? 영원사까지는 대체적으로 평탄하고 완만한 경사의 길로 보입니다. 이미 몇몇 등산객들이 하산을 해서 출구로 나가고 있네요. 주변을 보니 지금 등산을 하려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 이런 고독하고 분위기 오싹한 산행을 또 해야 하는 건가 생각하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네요. 알고 보니 이곳은 치악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금대분소라는 곳입니다. 입구에 가족단위의 캠핑객들이 모여서 시끌벅적하게 노닐고 있군요.
산세와 계곡의 흐르는 물을 보니 캠핑하기에는 정말 좋은 장소입니다. 어린이들도 좋아라 마구 뛰어다니고요. 하지만 여기 있는 홀로 나그네는 마치 지옥에라도 끌려들어 가는 듯한 마음으로 그 첫발을 내디디려 하니, 얘들아 나 좀 붙잡아 주면 안 되겠니?
제발 날씨만 화사하게 쨍쨍 내리쬐라고 하늘에다가 요구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봅니다. 이름 모를 새소리와 초록나무에 둘러싸인 산행길은 스타트가 일단 좋네요. 오가는 이가 하나도 없이 고요한 산길에 조금은 빠른 걸음을 재촉합니다.
조그만 다리도 지나고 약간 오르막길도 오르다 보니 차들이 몇 대 주차되어 있기도 합니다.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는데 조명이 점점 어두워지네요. 역시 예언한 대로 산속의 날씨는 예측불가이지요. 뒤로 빽해서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몇 번 해보면서 이놈의 영원사는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건지 조바심이 납니다.
슬슬 땀도 차오고 모자챙 때문에 시야가 가리니 더 공포스러운 분위기라 뒤로 돌려 써보기도 합니다. 다행히 어둠의 저편에서 등산객 두 명이 하산 중이니 그나마 반갑네요. 스마트폰 구글 지도를 보면서 가는데도 목표지점까지 파란 동그라미가 왜 빨리 닿지 않는 건지 원망스럽네요.
뛸까 하다가 체면이 있지 그래도 걷기로 하지요. 간신히 머리 위쪽으로 사찰이 희끗 보여서 마음이 놓입니다. 상당한 오르막길을 오르니 그야말로 영원사의 대웅전이 나타나네요. 주위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고 다행히 대웅전 바깥에 신발 하나 있어서 여자분 한 명을 보니 급 안심입니다.
산속은 어두운데 넓은 마당에서 보니 태양이 너무나 강렬하고 5시인데 대낮같이 밝네요. 좀 더 일찍 와서 상원사를 가볼걸 하는 후회가 밀려듭니다. 지금 상원사를 가라고 하면 도저히 못 가겠네요. 하루 종일 먹은 것도 없어서 그야말로 기진맥진 상태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좀 먹고 다녀야겠더군요. 사찰에 차 두대가 모두 큰 타이어의 외제차인 거 같은데 이런 곳까지 오려면 경차는 못 오니까 저런 차를 타는 거겠지요? 커다란 종도 있고 옆에 식수도 있고 너무나 조용합니다.
급 어두워질지도 모르니 얼른 하산으로 모드를 바꿔서 열심히 내려가기로 합니다. 영원사를 막 벗어나는 초입에 여자 두 분이 열심히 대화중이시네요. 누구나 만나면 이젠 반갑고 안심이 됩니다. 한분은 이곳 사찰에 계신 분 같고 또 한분은 등산객이신지 바로 인사와 함께 하산하시는군요.
사찰의 고양이 인지 사람이 접근해도 온화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저도 앞에 하산하시는 분을 쫓아서 열심히 뒤에서 총총 내려갑니다. 내려갈수록 날이 점점 밝아지는 신기한 현상. 산속의 조명시스템은 왜 이리 여행객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걸까요.
이렇게 꿩 대신 닭이라고 영원히 머물 것만 같았던 영원사를 급 방문하고 무사히 목숨(?)을 건지고 귀환한 본인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아! 이제 오늘의 첫 끼니를 때우러 식당을 검색해 봐야겠네요. 평생 처음 멋모르고 와본 치악산의 풍경은 가히 명산이라고 얘기하면 입만 더 아픈 수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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