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부드러운 면은 전부 써버렸다. 이후에는 가장 싫고 가장 거친 것만 쓸 것이다" -- 테네시 윌리엄스 <타임>지 인터뷰.

날씨가 종일 열대야를 오가고 있습니다. 

모든 일과 상황에서 짜증이 나는 계절이지요. 

제발 더 덥지 않기를 바라고 태풍 좀 그만 왔으면 합니다. 

이런 더운 가운데에도 집에서 시원한 선풍기를 틀어놓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읽는 것도 좋은 피서의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이번에는 고전 희곡을 읽어봤는데요. 

현대의 책들만 읽다 보면 왠지 좀 무료한 감이 있어서 가끔은 이렇게 옛날 책들도 접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특히, 대화체로 구성된 도서들은 읽는 재미가 더 배가가 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골라본 책은 바로 미국의 유명한 희곡작가인 테네시 윌리엄스가 지은 <유리동물원>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가도 미국의 대공황과 2차 대전을 몸소 겪은 시대에 활약한 분인데요. 

당대의 아서 밀러와도 많이 비견될 정도로 유명세가 있었다고 합니다. 

저야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얼마나 잘 나가는 사람이었을지는 피부로 확 느낄 수 없지만 지금의 한국에서 유튜브로 떼돈을 버는 뭐 그런 정도의 인기 아닐까요?

희곡은 사람이 직접 연극을 해서 보여주는 예술장르인데 지금은 왠만큼 재미있지 않고는 큰 인기가 없지요. 

영화와 인터넷에 밀려 그만큼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고 할까요. 

하지만, 1940년대의 미국에서는 유리동물원이 대히트를 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고 하니 시대를 참 잘 만났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 작품은 저자의 자전적인 스토리가 많이 녹아든 이야기 입니다. 

극에서는 엄마 아만다, 아들 톰, 딸 로라, 그리고 톰의 직장동료인 짐. 이렇게 네명의 등장인물이 전부인 연극입니다. 

아버지도 있었지만 어느 날부턴가 집을 나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요. 

★ 유리란 쉽게 깨지는 것이라며 자책하고 자기를 합리화하는 로라. 우연히 일어난 안좋은 상황을 본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나약한 로라. 제발 이 순수한 처자를 누가 좀 구해줘 !

아들은 신발공장을 다니면서 얼마 되지않는 급여로 세명이 사는 집안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지요. 

퇴근하고서는 영화보기에 한참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엄마와도 항상 말싸움을 서슴지 않고 하지요. 

엄마는 최대의 골치거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딸 로라를 빨리 시집보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로라는 약간 장애가 있어 다리 한쪽이 불편한 상태 입니다. 

딸은 약간 자폐증상이 있어서 남동생 톰보다 나이는 위이지만 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유리로 만든 동물들을 수집하거나 축음기로 음악을 듣거나 하는게 일상이지요. 

그런 꼴을 엄마는 속 터져합니다. 

★ "누나의 촛불을 끌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려는 거죠. 누나, 누나의 촛불을 꺼요. 그럼, 안녕 ....."  -- 동생 톰

이런 고민을 아들에게 말하자 직장에 짐이라고 하는 동료를 집으로 불러서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하지요. 

이에 크게 기뻐하는 엄마 아만다는 새 옷도 사고 각종 전등과 촛대 양탄자 등을 좋은 것들로 바꾸면서 짐이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초대받은 날 문을 열어줘야 할 딸 로라는 극구 짐을 만나기를 꺼려하는데요. 

짐이 그 옛날 고등학교 때 자기가 짝사랑했던 남자였던 거지요. 

그 당시 짐은 상당히 잘 나가는 엄친아 스타일이어서 뭇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상당히 많았지요. 

이런 짐을 멀리서만 좋아했던 로라였습니다. 

감히 자기 같은 보잘것없는 여자가 넘볼 남자가 아니라고 느꼈던 거지요. 

그렇게 천재 소리를 듣고 금방이라도 백악관에 입성할 스타 기질이 충분했던 짐은 그후로는 어찌된 일인지 변변찮은 행보를 걸어왔지요. 

 

톰과 같은 직장에서 많지 않은 급여를 받는 상태로요. 

어쨌든 짐은 로라를 기억을 못 합니다. 

그저 수많은 여학생들 중 스쳐 지나간 한명일 뿐인 거지요. 

엄마는 어떻게든 딸과 짐을 엮어주기 위해서 갖은 수다와 칭찬성 멘트를 쉬지 않고 날리는데요. 

 

당황해서 레모네이드를 옷에 엎지르자 "어머, 세례를 받았네요" 하는 위트 있고 피식거리게 만드는 대사는 참 재밌네요. 

톰은 전기세를 안 낸 관계로 집이 정전사태가 돼버리지요. 

결국 집안에 촛불을 켜고 있어야 되는 묘한 상황이 됩니다. 

오히려 짐과 로라에게는 더없이 좋은 분위기가 되겠네요. 

★ 1931년에 ROTC 입대자격시험에 실패해서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고 미주리대학을 떠난 후 신발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네요. 그 시절에 철야로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그렇게 로라의 방에서 짐은 단 둘이 있게 되지요. 

대화 속에 지난날 자기를 좋아했다는 로라의 말을 듣고 다소 놀라게 되는 짐. 

폐쇄적인 삶을 살고 있는 로라를 측은히 여기면서 각종 위안이 되고 자기 계발적인 훈수성 말로 로라의 자신감에 힘을 실어줍니다. 

예상했듯이 뽀뽀까지 진도가 잘 나가는 상황. 

 

로라는 짐을 자기의 남편이 될 것 같다는 환상의 단계까지 올라가게 되지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런 야망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지요. 

짐은 사귀는 여자가 이미 있고 조만간 결혼까지 할 예정이라고 폭탄선언을 합니다. 

저도 이런 반전의 상황이 있을 것이라고는 딱히 예상을 못했는데요. 

현시대에서는 당연시되는 상황이 많지만 저 시대에는 많이 당황스러웠을 것 같네요. 

연애관의 차이가 많이 변했지요. 

솔로일 거라고 기대했던 엄마와 딸은 얼마나 허무한 마음일지 상상이 갑니다. 

마치 믿고 잘 살던 배우자가 느닷없이 이혼을 요구하는 그런 느낌아닐까요. 

 

그렇게 짐은 여자 친구와의 약속이 있다면서 급히 집을 떠나가게 되지요. 

이렇게 믿었던 저녁식사 초대자리는 오히려 집안 분위기를 침몰시킨 꼴이 되었죠. 

톰은 이런 사실을 알고는 집을 나가버리지요. 

직장에 얽매인 삶보다는 드넓은 세계를 향해서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 유리동물원의 상징이 되는 일각수, 일명 유니콘이지요. 로라가 짐에게 쥐어준 깨진 유리동물. 위 사진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작품이라네요.

누나인 로라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이라고 할까요. 연민이라고 할까요. 

그런 감정을 먼발치에서나마 누나를 그리워하고 기원하게 됩니다. 

저자 윌리엄스는 그의 집안 환경의 모습을 그대로 이 작품에 인용하였습니다. 

도망간 아빠, 과거의 추억에 연연하는 엄마, 신발공장에서 일하는 톰. 물론 저자 본인이지요. 

 

그리고 실제 자폐증세를 보이고 후에 뇌수술을 받고 고생한 누나에 대한 속죄와 그리움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겪었던 부끄러운 가족의 얘기를 세상에 드러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저자는 잊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한 것처럼 그런 아픈 이야기를 굳이 감추지 않습니다. 

지금 읽어봐도 심히 공감이 많이가는 줄거리이네요. 

★ 1940년대 중반의 시카고의 시빅 시어터에서 <유리동물원>이 초연되어 호평을 받게 되지요. 이후 1년 4개월동안 563회 상연을 하고, 뉴욕 극평가상 등을 수상하게 됩니다. 

어려운 시절에 겪었던 실망과 좌절에 관한 그 민낯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더욱 공감과 호응을 얻었던 그런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로라가 짐에게 선물한 유리로 만든 일각수 동물 인형은 비록 바닥에 떨어져서 깨진 거지만, 성스럽고 순결한 그녀를 상징하는 징표였던 것입니다. 

시나리오 대본도 잔잔한 감격과 생각거리를 선사해 줄 수 있어서 더욱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유리 동물원
국내도서
저자 :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 신정옥역
출판 : 종합출판범우(BW범우) 201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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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서 "유리 동물원", 범우희곡선, 픽사베이,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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