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를 위한 책은 바로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일반 사람들에는 다소 거부감이 오게 되고 하필 그 많은 주제 중에 그런 암울한 것을 삼는지 불쾌하실 건데요. 맞습니다. 그건 피해 갈 수 없는 지적이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문제에도 조금은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요.
이 책의 저자는 코리 테일러(Cory Taylor)라고 하는데 여자분이시고 전직 소설가였는데요. 시나리오 작가도 했고 기타 여러 동화나 단편소설로 상도 많이 탔습니다. 작가는 환갑을 바로 넘긴 나이에 흑색종 관련한 뇌종양을 투병하던 중 세상을 뜨고 말았지요.
그의 인터뷰한 동영상을 잠깐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몸이 수척되었고 얼굴빛도 거의 잿빛에 가까워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암을 발견하고는 안락사를 하기 위해서 중국제 안락사 약을 온라인으로 구매하기도 했지요. 그것을 고이 간직하고부터 오히려 남은 삶을 편하게 느끼게 되지요.
고통 없을 때 본인의 결정으로 언제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확신이라고 할까요. 이 책은 그렇다고 내용이 어둡거나 눈물을 주체 없이 흘리게 하지는 않지요. 오히려 읽다가 몇 번씩 저도 모르게 웃은 적이 많거든요. 그만큼 작가는 위트 넘치는 글을 써내려 갔습니다.
그녀가 죽기 전에 죽음을 앞둔 많은 외롭고 고독한 환자들에게 그 느낌을 전달하고 위로를 해주기 위해서 지었다고 합니다. 병세가 악화되다 보니 본인이 직접 쓰질 못해서 대리로 글을 받아서 전기를 써주는 작가인 수잔을 통해서 저술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충격적 이게도 전기를 내주어야 할 수잔이 오히려 먼저 세상을 뜨게 됩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요. 마치 수혈을 받으러 온 사람보다 수혈을 해주는 사람이 먼저 돌아가신 상황 아닌가요? 이토록 요양병원에서의 상황은 예측이 참 불가능합니다.
이 책의 전반부 챕터에서는 시한부 인생인 그녀를 방송사에서 취재하면서 청취자들이 투병 시 궁금해하는 12가지 질문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쓰여 있습니다. 대부분이 좀 뻔한 질문들이 많지요. 좀 정리해보면, 버킷리스트는 없다, 자살을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종교에 귀의하지는 않겠다, 죽는 게 무섭다, 죽어서 좋을 일은 없다, 후회할 일들이 있다, 내세를 믿지 않는다.
내 삶의 우선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불행하거나 우울하지는 않지만 가끔 참을 수 없이 화나 날 때가 있다, 죽어가고 있다고 해서 더 큰 인생의 모험에 나설 생각은 없다.라고 얘기합니다. 그야말로,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마지막 생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느끼는 듯합니다.
작가가 기술한 내용 중 상당 부분은 바로 가족에 대한 회상이지요. 특히 그녀의 어머니와의 애틋한 추억과 같이 살아온 날들에 대한 기억을 많이 술회하고 있어요. 가족에 얽힌 밝히고 싶지 않은 것들도 많을 텐데 상당히 솔직 담백하고 용기 있게 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가족만은 건드리지 말라는 애원과 협박 같은 인터넷 기사들이 많지요. 본인의 문제도 처리하기 바쁜데 가족까지 언급하면 그 얼마나 악성 댓글들로 맘이 불편하겠습니까. 하지만 저자 코리는 이제 세상을 다 살아가니까 차마 말하기 힘든 가족사까지도 낱낱이 밝히기가 쉬운 걸까요?
아니면 가족에 대한 어떤 분노와 복수심(?) 같은 것도 있었을까요. 그녀의 파란만장한 가족사의 얘기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생활과 너무나도 판박이입니다. 호주라는 선진국의 살아가는 모습도 별반 우리네와 다를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항공기 조종사였던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자주 집을 비우고 어머니와의 잦은 말싸움과 다툼, 나중에는 서로가 헐뜯고 이혼까지 하게 되지요. 직업의 특성상 수시로 이나라 저 나라로 이사를 다녀야 해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해서 오는 처자식들의 정신적 스트레스.
저자와 친오빠, 친언니와의 무관심으로 인한 형제간의 갈등들. 어느 것 하나 한국과 틀린 내용이 하나도 없네요. 약 190페이지의 조그만 책이기도 하지만, 첫 챕터만 읽으려다가 한 권을 앉은자리에서 다 읽게 되더군요. 그만큼 내용에 너무 공감이 가고 마치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어요.
흡사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을 때처럼 호주판 김지영을 읽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가족 간에 살아가면서 겪는 얘기들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요? 특별한 계층에 사는 사람들이거나 대단한 사건이 있지 않은 이상은 아마도 사는 모습들은 비슷하겠지요.
큰딸과 아버지의 끝없는 말싸움과 불신, 어머니의 모은 재산으로 그동안 혼자 잘 먹고 잘 돌아다닌 아버지. 저자는 이혼한 아버지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묘사하지요. 한 여자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도 세명을 낳았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가족 서로 간에 친밀감은 없어지고 남보다 못한 사이로 변해가는 내용이 많이 안타깝고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다 성장한 자식들이 또 자식들을 낳고, 먹고살면서 무관심으로 인해 만나도 불편해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빨리 헤어지는 태도들이 과연 정상적인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건지도 의문스럽지요. 작가는 많은 시간을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같이 세계를 돌아다녔네요.
특히 일본에서의 생활을 최고로 꼽기도 했습니다. 호주 퀸즐랜드에서 태어만 낫지 제대로 정착한 곳이 거의 없어서 그녀는 본인의 유골을 호주와 일본에 각각 뿌려지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안정적이지 못한 방랑의 체험이 마지막 가는 종착지도 자유를 갈망하고 있네요.
이 책은 그녀의 마지막을 향한 진솔한 추억의 모음입니다. 가족, 사랑, 분노, 실망,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뚝뚝 묻어나는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네요. 여러분에게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심히 공감하시고 인생과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들이 남으리라 믿습니다.
다음은 "우리는 무엇일까?"에 대한 작가의 답변입니다.
"산책하는 몸을 따라서 마음이 걷지 않는다면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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