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unsplash.com) ◆  햇빛을 쬐면서 천천히 걷기는 그냥 재미있다.

일상의 생활을 가만히 살펴보면 실로 바람쥐 쳇바퀴처럼 쉴새없이 굴러간다.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그렇게 계속 하는거다. 그런데 언제가 이게 제대로 사는건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뭔가 매너리즘에 빠져서 휙하고 멀리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시간과 금전과 체력이 되면 언제든지 해외로든 국내 어디로든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세가지 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지는 직장인은 그렇게 많지가 않을 것이다. 일단, 시간이 갑자기 3,4일 또는 일주일 이상씩 비우기가 쉽지가 않다. 끽해야 설명절이나 추석때 간신히 여행계획을 맞춰서 어디론가 가는게 고작이다. 

그것도 용케 항공편이나 회사에서 다행히 휴가를 많이 용인해 줘야 가능하다. 만약 어느정도 쉴 수 있는 백수의 형태라도, 매일 똑같은 일상에 약간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의 무료함과 따분함이 올것이다. 밤새워서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 돌려보고, 이미 밖은 동이 터올라 치면 눈은 충혈된 채로 어깨와 목은 찌뿌듯한게 이제 진짜로 잠을 잘 시간이다. 

◆ 아파트를 조금만 벗어나면 주말농장에서 직접 채소와 텃밭을 가꾸는 모습을 볼 수있다.

남들은 출근하랴 쿵쾅거리며 현관문 소리 여닫는 그때 말이다. 뭔가 심한 죄책감이 자꾸 드는거는 어쩔 수 가 없다. 그렇게 아침 9시에 업무시작 시간에 본격적인 잠자리에 들어가는 그 비참함. 하지만 그간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직장에 헌신 했기에 이 프리한 시간을 최대한 만끽하려고 쓴웃음을 지으며 노곤한 나른함에 빠져든다. 

남들은 오후 업무를 하기위해서 낮1시 부터 자기 일에 빠지는 시간에 뱃속의 꼬르륵 소리에 이제 서서히 아주 늦은
아침잠에서 깨어난다. 부스스한 머리, 눈꼽을 덜어내고 세수는 생략한채 일단 냉장고에서 허기를 채를 뭔가를 찾아본다.
오이가 있다. 다이어트에 좋은 건강식품.

길다란 오이 한 개를 물에 대충 헹군다음 초고추장을 조금씩 뿌려가면서 와작와작 씹어먹는다. 체중조절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밥과 반찬도 없이 말이다. 그 후 그냥 블랙원두 커피를 뜨거운 물을 붓고 서서히 들이켠다. 오늘은 또 무슨 뉴스가 올라왔나 검색을 한다. 

이런 일상이 하루 이틀이 넘어가고 한 두달이 넘어가면 이제는 당연한 것 같지만 점차 죄책감이 든다. 이게 무슨 자발적백수의 생활인가 말이다. 운동을 할래도 힘이 없어서 못한다. 뭘 먹어야 나가서 뛰던지 할게 아닌가. 일단, 뭘 또 먹게되면 하릴 없이 너무 많이 먹게 된다. 

◆ 도심을 조금 벗어나 드넓은 바다는 아니라도 조그만 물웅덩이에 오리나 거위같은 생명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간 많이 다이어트 했으니 보상심리를 얻듯이 마트에서 장봐온 것을 계속 먹게 된다. 먹다 먹다 너무 많이 먹은거 같을때 어김없이 배가 살살 아파오면서 느낌이 온다. 화장실에 가기전 소화제를 먹을지 말지 고민을 한다. 이런 비효율적인 싸이클이 계속되다 보면 정신적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몸상태가 엉망이 된다. 

겨우내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면서 실내 환기도 없이 방안 텐트까지 설치해 이불 속만 들락날락하는 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저질 체력이 되었겠는가. 이제 춘사월을 넘어가고 따뜻한 햇빛과 벚꽃들이 흔날리면서 바람도 살랑살랑 따뜻하기 까지하다. 웬지 훌쩍 어디론가 가고 싶은 충동이 드는 계절. 

매일 조깅을 같은 시간에 하는 것도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동안 많이 했으니 오늘 하루는 좀 쉬어도 되겠지 하는 그런 게으르고 싶어지는 마음이 자꾸 생긴다. 실제로 조깅을 많이 하니 무릎이 좀 쎄한게 시큰거리는 증상들이 가끔 보이기도 한다. 더불어 핑계가 되니 이참에 좀 쉬고 싶어지는 거다.

단순하게 아무 생각없이 뛰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을까. 그렇다고 아예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니, 할 수 없이 좀 천천히 걸어보자. 이 따사로운 햇빛을 쬐고, 흙냄새와 벚꽃의 냄새를 맡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들의 부스러기까지 감상을 해보자. 

그렇게 이 대지에 살아있음을 새삼스럽게 느껴보고 아직까지 건강함에 감사하고 현재의 어지러운 난국들을 잠시나마 잊어보자. 너무 나갈때까지 재다보면 다시 눕게 된다. 그냥 어제 입었던 옷과 가방을 둘러메고 동네 아파트를 벗어나서 흙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내딛는다. 

싱그러운 햇살과 푸르른 산에 둘러싸인 생태공원의 고즈넉한 모습은 우울한 마음을 정화시킨다.

한낮의 태양이 온몸을 내리 쬐고, 많은 오르막길, 조금은 덥기까지 하여 팔을 약간 걷어 붙이고 주위의 꽃들을 최대한 감상한다. 아니, 나같은 분들이 참 많구나 느낀다. 나이들 지긋하신 분들이 삼삼오오 보이기 시작하며 둘레길에는 가족과 청춘남여 노인들 어린이들 모두 기쁨에 겨운 모습들이다. 

실외체육관의 푸른 잔디에서 가족들끼리 공을 차고, 어린이들은 조그만 자전거들을 타고 쌩쌩 달린다. 연도 하늘에서는 날고 있다. 텐트도 여기저기 쳐놓고 이 푸르고 청명한 하루를 움켜 잡고 있다. 이 얼마나 평화롭고 싱그러운 모습들인지. 앞으로 이렇게 자주 나와서 천천히 걸어야 겠다고 느낀다. 

짜증나고 너무 힘들지 않는 운동, 재미있는 활동. 일단, 일어나서 밖으로 조금 나와보니 걷고 싶은 곳이 있음을 알았다. 이 취미가 제발 오래가기를 빌어본다. 천천히 걷기. 우리 모두의 운동이다. 열심히 걸읍시다. 하정우씨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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