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럽고 봄볕 따듯한 오월의 하늘을 보고 있으면 집이나 사무실에서만 있는다는 게 너무나 잔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을 살아가는 중에 왠지 많이 밑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지요. 날씨가 좋은 날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만 나쁜 날에는 또 한 곳에서 조용히 차 한잔 마시는 것이 더 좋다고도 느끼지요.
한참 동안은 화창한 날이 었으나 만화박물관을 찾은 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기온도 많이 떨어져서 운전을 하면서도 겉옷을 입고 있어야 할 정도지요. 부천은 가볼 곳이 참 많은 도시인 듯해요. 인구도 거의 50만을 넘어 백만 수준에 육박할 거로 보이고요.
생각했던 것보다 큰 도시인 것은 맞네요. 어렸을 적에는 만화를 참 많이 본 듯합니다. 그 당시 <소년중앙>이라는 어린이 잡지는 매달 나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기쁨이 컸었죠. 아버지가 퇴근 시에 그 책을 가져왔을 때 책 외에도 부록으로 만들기 공작 같은 게 있었습니다.
속 내용의 만화도 좋지만 종이로 뭔가 만드는 재미가 더 좋았던 듯합니다. 또한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책으로는 <바벨 2세>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아이와 곁에 쫓아다니는 표범인지 개인지 하는 동물이 있었죠. 그와 대결을 벌이는 악당 <요미>도 있었고, <포세이돈>이라는 로봇도 나왔습니다.
시리즈로 나왔었는데 참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손을 통해서 전기적인 충격파를 발사해서 악당들을 마치 전기 통닭구이가 되게 만드는 능력을 참 부러워도 했습니다. 내 손에서는 저런 게 나오게 할 수 없을까 하는 기특한 생각도 했었지요.
특히, 주인공이 등 뒤로 총을 맞고 쓰러졌을 때 가슴 앞쪽으로 총알 세 개가 밀려져 나오면서 오히려 살아나는 장면은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다소 징그럽고 공포스러운 느낌이지만 당시 흑백 만화로 그려졌을 때는 뭔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바벨탑을 에워싼 모래바람 속에서 이루어지는 악당과의 대결구도가 참 흥미진진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만화책도 좋았지만 집에 전축이 있어서 만화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듣는 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지금은 초등이지만 그땐 국민학교라는 호칭으로 불렸죠.
<마루치 아라치>, <전자 인간 337>, <로버트 태권브이> 등등 당시 초등학생의 마음을 휘어잡은 만화영화 들었죠. 지금의 마블 어벤저스 히어로와 같은 동급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학교 가서도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모여서 주제가를 합창으로 부르면서 대단히 집중했었던 생각이 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좀 유치해서 고개를 젓게 되지만 어쨌든 당시엔 그렇게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추억들을 새삼 회고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을 찾은 것이겠죠. 이 곳에도 주차장은 널찍해서 좋습니다. 유료인데 30분에 4백 원 정도이지요.
그나마 좀 싸다고 느낄 수도 있지요. 다른 곳은 대부분 무조건 삼천 원 받는 곳도 많더군요. 물론 방문시간이 길어지면 더 내게 되지만 말이죠. 광장 이곳저곳에는 각종 캐릭터 모형과 인형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치가 돼있네요. 뽀로로 인형이 정문에 있고요, 트랜스포머, 저팔계, 날아라 슈퍼보드 캐릭터들도 보이네요.
입장료는 성인이 5천 원 정도입니다. 2,3,4층 정도가 전시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초창기 우리나라의 만화 시작 시기부터의 모습들이 보이고, 각 만화가들이 사용하던 필기구 같은 것을 볼 수 있게 해 놨네요. 특히, 만화가 길창덕의 파이프 담배와 담뱃갑이 인상적이었고 담배를 하루에 5갑씩 피웠다네요.
말년에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하고요. 창작의 고통이 정말 대단하구나를 엿볼 수 있었어요. <꺼벙이>, <순악질 여사> 같은 만화가 그의 대표작인데 참 재미있었습니다. <주먹대장>이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현재 영화 중에 <헬보이> 시리즈가 있잖아요.
그 주인공 오른손이 엄청 크지요. 그런데 수십 년 전에 이미 우리의 주먹대장의 주먹이 모티브가 된 게 아닌가 추측도 해봅니다. 큰 오른손 주먹이 캐릭터의 장점이 된 만화들이죠. 1층 화장실의 벽에도 온갖 만화로 도배가 되어있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화장실은 아마 이 곳이 처음일 거 같습니다.
세면대까지도 만화 배경으로 그려져 있을 정도니까요. 전시장은 주로 어린이들이 직접 체험해보는 코스들이 많습니다. 컴퓨터 그리기 펜으로 직접 화면에 그려보기도 하고요. 현대의 만화는 웹툰으로 까지 발전해서 영화로까지 상영되지요. <신과 함께>, <이끼> 등 대작들도 속속 보입니다.
옛날에는 펜촉으로 일일이 그렸다는 데에 엄청난 막일였겠는 반면 지금은 그나마 디지털화되어 좀 수월하게 작업하리라 보입니다. 보이는 그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스토리도 더 작품에 중요성을 좌우하기도 하죠. 현대 공포만화 <옥수역 귀신>은 좀 섬찟해서 잠깐 보고 지나쳤습니다.
장르도 이제는 세분화되어 공포물도 많이들 보는 것 같아요. 평범한 이야기는 더 이상 매리트가 없기에 좀 더 자극적인 것이 나오는 것이지요. 2층에는 도서관도 있는데요. 물론 만화들만 꽂혀 있고요. 정말 많더군요. 더구나 만화책을 보는 관람객들이 엄청 많습니다.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서 만화책을 쌓아놓고 만화 삼매경에 빠진 모습이 정말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박물관 광장 쪽에도 여러 가지 재미있는 캐릭터 모형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고요. 뒤쪽으로 가니 전통체험마을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초가집과 기와집들이 있는데 싱그런 나무들과 어울려있고 조그만 화분들로 둘러싼 모습들을 보니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느낌이 확 듭니다. 나중엔 이렇게 집을 짓고 마루 평상에 누워서 곤한 낮잠을 자고 싶을 정도입니다. 체험마을 뒤쪽에는 주말농장으로 각종 채소들을 재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네요.
조그맣게 구역이 나누어져 있어 그 앞에 밭의 주인 이름 팻말이 죽 놓여 있고요. 정말 가슴이 차분해지고 막 재배하고 싶게끔 만드는 그런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곳입니다. 만화박물관과 전통한옥체험마을과 주말농장의 모습까지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힐링이 되는 그런 발걸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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