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초판, 2008년 56쇄.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하루키의 단편은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신선한 상상력과 충격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1. 도서관에서 있었던 기이한 이야기


오랜만에 하루키의 오래된 단편 걸작선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소설가이다 보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독자층이 많은 작가이지요.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로도 몇 번이나 거론되기도 했었지만 수상은 하질 못해서 다소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는 주로 장편의 소설들을 근래에 많이 써왔는데 단편으로된 소설들도 많이 썼네요. 솔직히 이번에 책을 골라보다가 알게 된 거지만요.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걸작선>이라는 책은 출간된 지 무척 오래된 도서입니다. 겉표지에서부터 이미 고전적인 디자인이 팍팍 느껴지는데요. 

 

 

첫 장을 넘겼을 때 하루키의 거의 젊었을 때의 컬러사진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매우 친근감 있게 생겼네요. 옆동네에 사는 예비역 형님 같기도 하고요. 뭉툭한 코와 두꺼운 아랫입술, 묵직하게 머금은 입 주변 모양새는 실로 무뚝뚝함의 표본을 보는 듯 합니다. 

 

◆ 카페사장을 하다가 갑자기 잘 할 것 같아서 작가로 전향한 소신가. 규칙적인 생활 패턴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원동력일 것입니다.  

겉모습과는 다르게도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신데에 존경과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데요. 지금은 상당히 푸근한 스타일로 노년의 완숙함이 묻어나지요. 많은 작품 중에서 <도서관에서 있었던 기이한 이야기>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요. 

 

과연 유명작가가 도서관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겪었을지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지요. 이야기의 느낌은 환상과 공포감이 약간 가미된 SF소설 같다고 할까요. 위트와 유머적인 대화도 간간이 터지기도 하고요. 마치 꿈속에서 일어난 일을 기술해 놓은 듯한 내용이지요.


작가의 상상력이 크게 한몫을 한 그런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집근처의 국립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고 다시 빌리기 위해서 대출 여부를 묻는데요. 책 내용은 "오스만 제국의 세금 징수 정책"에 대한 도서입니다. 내용도 참 상상을 뛰어넘는 듯 엉뚱하지요. 

 

◆ 많은 단편글들도 독자들에게 많은 상상거리를 제공합니다. 도서관의 이야기는 가히 호러영화를 방불케 하는 충격을 주지요.

 

대출을 담당하고 있는 노인은 관련된 책 세권이 있다며 도서관 지하실로 주인공을 인도합니다. 미로같이 어둡고 컴컴한 곳을 지나 마침내 감방 같은 곳에다 가둬놓고 세 권을 다 외우라고 하지요. 며칠의 기한을 주고 그때까지 외우지 못하면 뇌의 척수를 빨아먹는다고 협박하는 괴상한 노인. 

 

급기야 호러,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장면이 연출되네요. 머리에 양의 탈을 뒤집어 쓴 "양사내"라는 인물이 있는데 노인에게 버드 나뭇가지로 학대를 받으면서 주인공을 도망 못 가게 관리하게 되지요. 이야기가 점점 만화책에나 등장할 듯한데요. 

 

감방에 갇힌 동안 삼시세끼 먹을 것을 챙겨오는 아름다운 소녀도 등장하지요. 시간 내에 집에 안 가면 어머니한테 혼이 나고, 기르고 있는 찌르레기가 걱정이 된다면서 주인공은 하소연을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소녀와 말이 통하고 양사내의 도움으로 초승달이 뜨는 날 밤에 도망을 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많은 작품중에서 과연 다 읽은 책이 얼마나 되는지.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감상했으면 합니다. 

도서관 가까이 다 왔을무렵 이미 낌새를 눈치챈 노인이 검은 개와 함께 입구를 딱 지키고 있지요. 검은 개가 찌르레기를 입으로 씹어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찌르레기가 점점 커지더니 개의 입을 찢고서 사자만 하게 커졌네요. 

 

이런 틈에 가까스로 도서관 밖으로 양사내와 탈출을 했는데 주인공 혼자만 덩그러니 놓였습니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 요즘 넷플릭스에서 기묘한 이야기 시즌3가 한창 유행인데 하루키의 기이한 이야기는 그에 버금가는 이야기 같습니다. 

 

 

몇십 년 전에 하루키는 이미 SF, 호러 이야기를 이토록 잘 만들었었네요. 가위에 눌린 한 편의 꿈과 같은 얘기를 거리낌 없이 서술했습니다. 상당히 허무하지만, 짧은 단편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스토리입니다. 젊었을 때의 작가의 상상력이 이토록 환상적이라는 데에 또 한 번 놀랐네요. 

 

◆ 어느땐가부터 장편은 사다만 놓고 쉽게 읽지를 못합니다. 짧은 단편이 오히려 더 좋네요. 짧게 함축된 내용이 간결하고 깔끔합니다.. 

오래간만에 집중하면서 기이함을 경험하게 해 준 짧은 단편이었습니다. 


2. 택시를 탄 남자


두번째 작품은 <택시를 탄 남자>인데요. 이 또한 제목이 뭔가 심오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오지요. 일본에서 화랑을 하는 여자가 겪은 일을 회상하는 얘기인데요. 기이한 이야기처럼 뜬금없는 황당한 얘기와는 전혀 대조적이라 조금은 실망을 했습니다. 

 

기자인 주인공이 잡지에 낼 기사를 찾다가 화랑의 여사장님의 사연을 듣게 되는 설정이지요. 여사장이 미국에서 유학할 때 미술 바이어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택시를 탄 남자>라는 그림을 소장하게 되었지요. 그 그림에서 그녀는 진한 애착과 연민을 오랫동안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 귀국할때에 그녀가 소장했던 모든 그림을 다 불태우게 됩니다. 그렇게 잊혔나 했지만 그리스의 아테네를 여행하는 도중 그 그림 속의 주인공이 실제로 탄 택시에 함께 동승을 하게 되지요. 그 남자는 헤어지면서 그리스어로 "카로 택시지"(즐거운 여행을!)라고 건넵니다. 

 

◆ 현대의 우버를 탄 택시타는 남자는 아닐까요? 고전적 소설의 소재가 되려면 클래식한 택시가 제격이겠지요. 우버를 탄 남자는 어떨지.

이 말에 그녀는 "나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이 이미 상실하고 말았지만, 그것은 한 부분만 끝난것이고 지금부터는 무엇인가를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심지어는 교훈도 얘기하는데요. 

 

"사람은 무엇을 지워버릴 수는 없으며, 지워져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라고 말합니다. 다소 짧은 에피소드인데 조금은 밋밋하게 끝을 내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애착하던 소품에 대한 추억과 생각지 못한 경우에 다시 그 추억을 맞이한 순간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얘기하려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작은 물건이라지만 뜻깊은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었네요. 공포만화 같은 내용에 비해서 이처럼 잔잔하게 가슴에 여며오는 회상적인 이야기를 오고가는 하루키의 색다른 작품들을 감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듯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일상의 여백을 가벼움의 미학으로 터치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문학의 정수를 모은 책. 중국행 화물선, 뉴욕탄광의 비밀, 빵가게 재습격, 택시를 탄 남자, 레더호젠 등 20여편의 작품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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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도서<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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