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의 거장은 여러명이 있는데요. 단연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오늘은 바로 그 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어라는 작품을 우연찮게 보게되었습니다. 저자의 기존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지요.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지하로부터의 수기> <백치> 등등 19세기의 문학을 대표하는 그의 작품입니다.
본 지가 꽤 오래되어서 언뜻 조금씩만 기억이 나지만 그가 구사하는 문체들은 톨스토이처럼 상당히 한 호흡이 대체로 깁니다. 톨스토이의 필체가 훨씬 더 길기는 하죠. 한 아이템이나 어떤 이의 심리상태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하는 그런 느낌이 많이 들지요.
그의 작품중 악어 라는 단어가 워낙 궁금하기도 해서 보게 되었는데 중단편 소설이라서 몇십페이지 정도 됩니다. 과연 야생의 포식자인 악어 즉 크로커다일로 얘기를 쓸 수 있을 런지요. 생물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생물도감을 만들지는 않았을 테고요.
저자는 실제로 일어났다는 말로 시작을 해서 실화인가도 살짝 의심이 가더군요. 소설가가 과연 다큐멘터리를 쓴건지 상상해 보게도 되고요. 저자는 친구인 이반 마뜨베이치와 그의 아내와 함께 시내의 아케이드에 전시된 악어를 구경하러 가게 됩니다. 얼마간의 외국의 지식여행을 가기전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일까요.
19세기 당시에도 악어는 있었겠지요. 정글에서만 사는 녀석을 아마도 독일인이 돈벌이에 이용하기 위해서 가져온 것이지요. 현 시대에도 악어를 보려면 커다란 동물원 정도는 가야 볼 수 있을 텐데 당시 안전하게 전시할수 있는 장치가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악어 전시장에 도착해서 구경을 하는 도중에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묘사가 되죠. 예상한대로 바로 친구 이반이 악어에게 잡아먹히고 마는 것이죠. 시식하는 과정이 좀 살벌하고 구체적으로 기술되어서 섬뜩하긴 합니다. 한번이 아니라 몇번 먹히는 과정을 거침없이 기술하고 있죠.
이건 소설이 공포 괴기소설인가 하고 읽다보니 악어 뱃속에 들어간 이반이 갑자기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이제 진짜 소설이구나 하고 깜짝했습니다. 뜬금없는 만화의 세계로 빠지는 건가 하고 말이죠. 문학의 대가께서 농담을 섞은 허무맹랑한 얘기로 끝날 것인지 대단히 조마조마 합니다.
톨스토이의 주홍글씨의 마지막 장면들에서 처럼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고 심금을 울려서 실제로 눈물이 나도록 하는 감동을 기대했거든요. 악어는 그런 예상을 여실히 빗나가게 합니다. 악어 안에 갖힌 이반은 그 안이 예상외로 텅텅 비어있고 일반 고무제품과 비슷하다고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알도록 하겠다는 엉뚱한 말을 하지요.
이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반박하기가 아주 쉽다고도 합니다. 그가 말한 내용을 잠시 들어 보자면, "위대한 사상으로 이미 배가 엄청 부르다", "야만적인 사람들은 독립을 좋아하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질서를 좋아하지.", "인류의 운명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 등 뭔가 사람이 변한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 정도 진행되다 보니 무언가 저자가 얘기하려는 진의가 느껴지지요. 당시 사회적인 어떤 모순에 대한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작가의 생명은 바로 거침없는 말투를 글로 옮겨서 일반인들이 체험하게 하는 것 아닐까요. 당시 러시아의 정치적 환경은 일명 급진주의자들(사회주의자들)의 입김이 세져 있었지요.
그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작가가 쳬르니셰프스키인데요. 그는 당시 서구 유럽에서 나온 다양한 사회서적들을 탐독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바로 자유를 박탈하고 공산사회를 옹호하는 그런 사상과 이념으로 무장된 자입니다. 물론 말년에는 수용소에 감금되어 비참한 생을 마감했지만요.
여하튼 소설에서의 이반은 이런식으로 저자에게 그의 사상을 계속 주입하고 자주 만나다 보니, 저자는 마치 이반의 비서가 되버렸다고 느끼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친구 이반이 악어에 잡아 먹힌 사태에 대해서 각종 언론과 신문들은 편파적인 내용들을 보도하기에 이르지요.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말이지요.
결국에는 악어에 먹힌 이반보다는 오히려 악어를 동정하는 기사들이 뿌려집니다. 이반은 집에 있는 아내에게 같이 와서 악어 뱃속에서 살자는 편지까지 보내려 하지요. 이 말을 들은 아내는 펄쩍 뛰면서 정치나 철학같은 재미없는 말만 늘어놓으면서 파티와 흥미있는 것도 없는 그런 곳에서는 같이 살기 싫다고 펄쩍 뜁니다.
아내의 심정도 십분 이해가 가기도 하지요. 이렇듯 허무맹랑하고 만화같은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담긴 세태의 비판적인 기술은 바로 이 작품의 핵심사상일 것입니다. 바로 악어의 내부는 그 당시 급진주의자가 추구했던 완벽한 사회체계인, 즉 수정궁을 희화한 것이지요.
과거 전통과의 유대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상이나 감정만을 주장해서는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도스토예프스키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 같은 작가로서 서로간의 이념과 생각이 달라서 이러한 글로써 대항하는 모습들은 우리 일제시대의 문인들과도 비슷해보입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힘으로 안되면 말로, 말로 안되면 글로 표현하는 정신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이런 노력에도 러시아가 아직도 사회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안타깝기는 하지요. 대문호의 글빨이 더 강한 영향력을 주었으면 어땠을까요.
"단결심이 없고, 서로의 사랑이 없고, 공동합치가 없으면 위대한 일은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다. 이것이 없으면 사회자체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참 좋은 요약글이 되겠네요. 제목은 악어처럼 단순한 동물 이름이지만 역시 대문호가 매듭짓는 소설의 메시지는 그 깊이가 확실히 다릅니다.
악어는 바로 급진주의에 대한 그의 삐딱한 시선을 느껴볼 수 있는 만화같은 짧은 소설이었습니다.
(사진=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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