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4부작 드라인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는 실제로 1980년대 후반에 벌어졌던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하였습니다. 드라마 마지막에는 그때 당시의 다섯 주인공들의 현재의 모습들을 한 명씩 보여주고 있지요. 현재 하는 일과 가족들, 근황들.
미국 센트럴파크 공원 근처에서 저녁에 조깅을 하던 백인 여자가 잔인하게 머리 부위를 돌로 찍히고 큰 부상을 당하고 강간까지 당한채 발견됩니다. 이 사건이 벌어졌을 즈음에 일련의 흑인 미성년들이 공원에 모여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놀게 되지요.
심지어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귀찮고 위협이 될 정도까지 소란들을 피우기까지 합니다. 경찰이 출동하자 서로 뿔뿔이 흩어지고 아수라장이 되는데 여기서 다섯명의 소년들이 검거가 되고 백인 여성을 폭행한 용의자로 잡혀가게 되지요.
시즌1로 이제 막 시작했으며 약 1시간씩의 러닝타임을 갖고 상당히 짧게 4부작만 오픈이 되어있네요. 경찰서에서는 악덕 행정치안의 선봉대라 할 수 있는 경찰의 강압수사가 이루어집니다. 무대는 미국의 중심부인 뉴욕의 경찰서. 모든 언론과 기사거리의 중심부인 곳이지요.
다섯 명의 미성년자 아이들은 몇 시간씩 계속되는 수사와 쫄쫄 굶겨가면서 닦달을 해대니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난생처음으로 경찰서라는 곳에 와서는 보호자와 대동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거구의 험상궂은 조폭 같은 형사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경찰들은 사건을 어떻게든 손쉽게 해결하기 위해서 있지도 않은 내용을 짜맞추기해서 다섯 명 각자에게 스토리를 외우게 한 후 녹화 비디오를 찍고 가짜 진술서 밑에 사인을 하라고 윽박지릅니다. 이런 미성년자들에게 강간죄, 폭행죄, 폭동 죄 등을 덮어 씌움으로써 경찰의 수사 위신도 세우면서 일사천리로 해결해 버리지요.
하지만, 이들 다섯명에 각각 변호사들이 한 명씩 배정이 되고 그들이 모두 무죄임을 변론하고 진실을 가리고자 하는 경찰의 행정에 맞서게 되지요. 폭행당한 여성은 실제로 잘 걷지도 못하고 법정에서는 대부분 기억 상실증을 호소하게 됩니다.
아이들 서로간에 강간을 했다고 거짓 진술을 강요하게 하고 알리바이들이 진술과정에서 잘 맞지가 않지요. 서로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사건을 완벽하게 뒤집어 씌울 수 있도록 스토리를 짜 맞춘다는 게 여간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 짧은 시간에 고도의 베스트셀러 극작가라도 완벽하게는 못하는 법이지요.
법정 싸움을 하면서 곳곳에 증거 불충분과 헛점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무죄가 될 것 같은 상황도 몇 번 옵니다. 그 많은 노력과 진술에도 결국은 모두 유죄로 네 명은 소년원으로 한 명은 16살 성인을 간신히 넘었다는 핑계로 성인 교도소로 수감되지요. 그렇게 모두들 6년에서 14년까지 복역들을 하게 됩니다.
그런 그들이 수년후에 사회에 나와서 맞이한 상황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입니다. 강간범, 폭행범 같은 전과의 기록은 고스란히 평생을 따라다니는 옥쇄와도 같았지요. 하다못해 햄버거 가게 같은 곳에라도 취직하려 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자격증을 따야 하는 직업에도 기회가 박탈되고 말지요.
수입활동을 할 수 없으니 집에만 박혀 있으라는 건지, 정말 아무런 사회생활을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놓은 사회에 정복당하고 맙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집을 구하려해도 돈이 안되어서 결국은 마약거래에 손을 댔다가 다시 검거되는 경우도 있네요.
어딜 가나 그들의 사건이 이미 방송을 탔던지라, 그들을 알았던 사람들도 슬슬 피하기만 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진심 어린 관심과 배려를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변해버린 주위의 모습에 허탈해하거나 자포자기의 심정까지 듭니다. 모두들 자기들은 그날의 범행에 절대 가담하지도 않았고 무죄임을 알면서도 범행자라는 올가미가 씌운 상태에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음을 알게 되지요.
너무나 안타까운 지경입니다. 한 소년의 아버지는 본인이 젊었을때 죄가 있었음을 경찰이 알고서 일자리를 잃기 싫으면 아들의 거짓진술을 도우라고 강요까지 하는 장면이 있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의 보석금 마련을 위해 쉴 새 없이 일해야 한다면서 아들의 심문 과정에 전혀 동참하지도 않습니다.
이를 모르는 아들의 울부짖음에 어쩔 수 없이 말못하는 아버지의 진퇴양난의 상황에는 분이 날 정도이지요. 성인 교도소로 수감된 청년은 그곳에서 갖은 집단폭력에도 면회 온 어머니에게 억지로 잘 지낸다는 말과 함께 자주 면회 좀 와달라는 부탁이 눈시울을 뜨겁게도 합니다.
수감된 교도소의 담당 교도관의 계속되는 뇌물의 요구로 인해 어머니께 영치금 좀 더 넣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흑인들은 삶이 그렇게 풍족한 편은 아닌데, 교도소 아들과의 1분 통화료가 23달러라고 합니다.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는 수준이지요. 이에 개탄하면서 치를 떨고 맙니다.
TV에서는 지금의 미국대통령 트럼프가 나와서는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막말을 쏟는 장면이 나오지요. 가난한 자의 진실을 보지 않고 무조건 희생된 백인의 이익만 옹호하는 파렴치한의 대명사격으로 등장한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트럼프는 어디 가나 화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더군요.
교도소에의 지긋지긋한 감방생활과 찌는듯한 더위에도 에어컨이 안나와서 알몸으로 견뎌야 하는 생활이 계속되지요. 끝없는 생활 속에 급기야 소년 시절의 지나간 추억들을 회상하면서 환상을 일으킬 정도까지 되지요. 여렸을 때 여자 친구와 놀이동산에 놀러 가고 싶었던 환상에 괴로워하는 모습에 서서히 몸과 마음이 지쳐가면서 폐인이 되고 맙니다.
시간이 흘러 다른 교도소 이감신청을 해 갔을 때도 적응이 쉽지 않았으나 폭행사건의 실제 범인이 자백을 하는 과정으로 인해 그간의 죄를 다섯 명 모두 사면받고 무죄로 판명이 나게 됩니다. 한 순간의 행정상의 이기적이고 잘못된 결정으로 죄 없는 다섯 명의 인생이 나락으로 빠져버린 이 스토리는 우리에게 생각해 주는 문제점이 많습니다.
유색인종에 따른 인권에 대해서, 행정편의를 위한 잘못된 희생의 결과에 대해서, 정치와 언론과 사회적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가에 대해서, 그리고 소외된 그들이 진실을 끝까지 품으며 노력한 세월에 대해서 말이지요. 백인만이 우월하다는 생각은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오래된 편견입니다.
사람을 겉모습의 색깔로만 구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진실. 진실은 세월을 초월하여 끝까지 살아남는 것 이것이 중요하겠지요. 어린 다섯명의 소년들이 10년 이상이 지난뒤에 모두 성인 연기자들로 역변했는데 배우 Freddy Miyares가 제일 훈남이네요.
짧지만 가슴뭉클한 메시지를 전해준 넷플릭스의 흑인이 주무대인 드라마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는 인권과 진실, 편견, 가족 간의 희생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드라마입니다.
(사진=넷플릭스,NETFLIX)